얼마 전 책장을 옮기던 중 오래된 앨범에서 빛 바랜 (꽤 괜찮았던) 성적표와 동문 친구들의 사진을 발견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6, 70년대 아날로그 시대의 정다운 만남의 장소였던 다방에서 만나 몰려 다니던 그들과의 추억은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지금껏 카톡방에서 안부를 주고받는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그토록 조건없이, 이유없이 깔깔거리며 가까워질 수 있었던 우정어린 관계를 이민 생활에서는 쉬이 얻지 못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내 자신이 순수함을 잃었기 때문일까?나이가 많아질수록 사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가지만, 가족들이 떠나간 빈 자리를 가까운 지인들과의 소중한 인연들이 대신해주며, 나의 삶에 향기를 더해 주고 있다.
‘不可近不可遠(불가근불가원)’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제 이득에 따라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즉, 적당함의 미덕을 지킨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살아가면서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순간들과 마주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인격의 담을 무너뜨리고 거친 말을 입에 담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종종 있다. 공자는 ‘三益友三損友(삼익우삼손우)’라 하였다. 성품이 곧고 믿음직하며, 견문이 넓은 자를 유익한 친구로 여기고, 말만 앞세우고 형식만 차리며, 성격이 옹졸한 자를 해로운 친구로 여기라 하였다.
내 스스로 다른 이에게 삼익우가 되어 가치있는 우정을 나누려면, 먼저 자신을 갈고 닦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진실한 우정이 나에게 저절로 다가오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내 자신이 변화하여 먼저 남에게 진실하게 다가가는 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독일의 작가 쉴러는 ‘감싸주는 친구와 함께하면 기쁨이 배가 되고, 슬픔이 반이 된다’고 했다.
삶을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인연들에게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줄 누군가를 기대하는 것은 진정한 우정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가는 와중에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며 상대방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성실함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우정의 자세가 아닐까? 내가 소중한 누군가에게 공자의 삼익우와도 같은 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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