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시어머니께서 해주신 한복 중에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입으라고 해 주신 남치마와 회색 저고리가 있다. 그 회색 저고리에는 남색 끝동과 자주 고름이 달렸다. 자고로 부인의 저고리에 남끝동을 다는 것은 아들이 있다는 표시였고, 자주 고름을 다는 것은 남편이 생존해 있다는 표시였다. 어머님께서는 결혼 후 내가 아들 낳고 남편 온전한 복을 안고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이
렇게 어머님께서 남끝동이 달린 한복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딸만 둘을 낳았고 그리고는 그만 낳기로 했다. 어머님께서는 아마도 섭섭하셨을 테지만 우리 부부에게 절대 내색하시지는 않으셨다.
아들을 많이 낳고자 한 염원은 전통 복식에 많이 발견된다. 석류 문양이 직조된 직물에는 석류알처럼 많은 자손을 보고 싶다는 염원이 담겨있으며, 복숭아 문양, 동자 문양도 다산을 상징한 것이었다. 수 놓은 연꽃 열매, 금박 장식된 포도 문양 역시 송이 송이 맺힌 열매가 번창하는 많은 자손, 즉 아들을 의미했다.
조선 후기 사회 구조가 남아를 선호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관념이 상징으로 도안화되어 복식에 표현되어 계층, 집단 내에 파급되었으니 당시 유행한 문양을 하나의 패션 현상으로 볼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남아 선호 사상은 최근 10년 사이에 빠르게 바뀌었다. 딸과 아들의 법적 권리도 동등해졌고, 결혼 후 부모에게 더 가까운 쪽은 딸인 경우가 많아 어느새 딸이 환영받는 세상이 되었다.
남아 선호를 위해 시문한 문양이나 색상이 가졌던 의미 역시 현대 한복에서는 완전히 퇴색했다. 그런 가운데 내 관심을 사로잡은 건80년대 후반 즈음부터 결혼식 때 양가 어머니가 구분되게 입는 한복의 색이다. 신랑의 어머니는 푸른 색 계열을, 신부의 어머니는 분홍색 계열을 입기 시작했다.
성별에 따라 구분한 듯 보이지만 세간에서는 ‘시어머니는 서슬이 퍼래서 푸른 색’을 ‘친정 어머니는 곱게 키운 딸을 주는 것이 분하여 분홍색을 입는다’ 한다. 매서운 ‘시’ 월드 전통이 퇴색해지는 시대가 오면 결혼식 때 양가 어머니가 입는 한복의 색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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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한국복식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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