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위니펙에 사는 운이 조카가 겨울 풍경사진을 보내왔다. “아재, 북극 땅에 무리해가 떴습니다. 오로라하고 또 다릅니다. 이런 기현상은 난생 처음입니다.”
희뿌연 동토의 하늘에 세 개의 태양이 떠있다. 가운데 가장 큰 태양의 양 옆으로 작은 해 둘이 후광을 뿌리고 있다. 고리나 무리모양이란 뜻인 무리해, 천문학 용어로 환각의 해, 환일(幻日)로 불리는 대기현상이다.
무리해는 겨울 하늘에 흩어진 얼음 결정체들 때문에 일어난다. 미세한 육각편상의 빙정(氷晶)들은 프리즘이 되어 빛을 22도씩 굴절시킨다. 얼음 편린들은 대기에 수직으로 가라앉아 태양빛을 수평으로 반사한다. 얼음 결정에 반사된 빛 덩어리가 또 다른 해가 뜬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가짜해(mock sun), 혹은 유령의 해(phantom sun)라고도 불린다.
태양을 우롱한 가짜해, 유령처럼 불길하고 음습한 이런 기현상을 고대인들은 멸망의 징조로 여겼다.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나 로마의 키케로도 무리해를 우려하듯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쉐익스피어는 희곡 “헨리 6세”에서 장미전쟁 중에 홀연히 뜬 세개의 태양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요즘 와선 선도그(Sundog) 란 속칭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큰 태양 옆에서 해질 때까지 주인을 따라다니는 충견이란 의미이다. 물론 자연현상을 이해한 북구인들의 긍정적인 해석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가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거짓해의 의미가 더 크다.
2016년의 세모에 서서 나는 하늘에 뜬 가짜해들을 보고있다. 밝은 희망과 뜨거운 생명력 넘치는 태양의 본질을 가리고 유령처럼 뜬 희뿌연 해들을 망연히 보고있다. 하나 밖에 없는 태양의 참빛을 굴절하고 왜곡시킨 채 세상을 호도하는 껍데기 무리해들을 보고있다.
일년 내내 미국대통령 선거 캠페인 동안 질식할 것 같았다. 온갖 비방과 흑색선전들이 하늘에 떠다니는 공해 쓰레기같았다. 말의 공해 입자들은 진실을 굴절시켜 마치 태양의 참빛인 양 세상을 속였다.
미국땅에 상생과 포용과 관용 대신 상극과 대립과 배척의 오염된 빛의 그림자들이 태양을 가리고 하늘에 떴다. 모두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참 빛인지, 굴절광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나는 70년대, 38대 포드 대통령부터 40여년간 8번의 선거전을 목도해왔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은 민주, 공화당의 선호를 떠나 내게 늘 새 비전과 희망을 일깨워주었고, 미국의 삶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창달에 미력이나마 이바지하겠다는 시민의식을 키워왔다. 그러나 을해 난생처음 불길하게 뜬 무리해 아래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한국에도 유령의 해들이 떠다닌다. 애국심을 가장한 권모술수와 기만에 능한 좀비들로 한국은 난파 직전이 되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여 대통령의 침몰을 틈타 하이에나들처럼 물고 뜯는 모리배들의 행각은 2016년을 좌절과 회한의 한 해로 대 못질을 했다.
그러다가 지난 주 한국일보 독자란에 실린 산호세 양영순님의 “어떤 감사로도 부족한 감사”란 글을 만났다. 멕시코의 작은 도시에서 졸지에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치료를 받는 아들을 찾아간 과정을 담담하게 일기처럼 그렸다. 그런데 내용은 아들을 억울하게 잃은 부모의 참척의 슬픔보다 그 현장에서 따뜻하게 도와준 분들에 대한 감사로 가득했다.
생면부지의 멕시코 동포들이 치료에서 장례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발로 뛰며 도와준 사랑으로 큰 위로를 받은 고백이었다. 어두운 하늘에 갑자기 태양빛이 비쳤다.
가짜해가 아무리 세상을 현혹해도 태양은 살아있다. 대통령이나 정치꾼들이 못하면 너와 나, 민초들이 살려낼 것이다. 사랑과 감사와 배려와 희생을 서로 나누는 인간애와 민주 의식은 참빛이다. 착시에 불과한 가짜해, 무리해는 결국 얼음처럼 스러지고 태양은 다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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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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