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두두두…. 장대 같은 겨울비 퍼붓는 소리에 새벽잠을 깬다. 잠시 달콤한 게으름을 즐기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출근길에 나선다. 지난 4년여 캘리포니아에 심각한 물부족 사태를 불러왔던 겨울 가뭄은 이제 해갈이 되려나 보다. 대지는 촉촉한데, 휴업에 들어간 기업들이 많아 프리웨이는 눈에 띄게 한산하다.
야자수 그늘 밑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칵테일과 함께 하는 세모를 보내는 이들도 많겠지만 남들 다 떠난 고요한 사무실에서 차분하게 한해를 돌아보며 감회에 젖어 보는 것도 괜찮다. 올 한해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중학교에 입학해 ‘1972년 수학 완전정복’ 이라는 자습서를 접하면서 내게는 연도의 개념이 심어지기 시작했다. 2학년에 올라가니 ‘1973 물상 완전정복’ 이라며 자습서의 연도도 따라 올라가는 것 아닌가. 그때로 부터 어느덧 44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아무리 보내기 싫어도 2016년을 영원히 기억 속에 묻어야 한다.
2016년에는 이별의 시간이 있었다.
업계의 선배님을 도와 자원봉사해 오던 일에서 손을 놓기로 했다. 4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북가주 부동산?융자 전문인 협회의 교육담당 임원으로 각종 세미나를 진행하고 업계 전문인 헌장의 초안을 만들고 공포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동료 전문인들이 저마다 과대광고를 하는 등 볼썽사나운 경쟁을 한다면 시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일 없이 공정하게 길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 등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애써 제정한 헌장을 저버리는 독자행동으로 동료들을 허탈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데 많은 이들이 인식을 같이하는, 상식이 존중받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되돌아보면 협회 일로 약간의 자원봉사를 했다고 해서 비즈니스에 큰 지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충분한 기간 기쁨 속에 봉사했으니 이제 떠나도 될 시간이 된 것 같다. 떠날 때는 말없이…2016년에는 의미 있는 만남의 시간들도 있었다.
각기 사는 지역의 중간지점인 레드우드 씨티 코스코에서 친구를 만났다. 푸드코트에서 갓 구워낸 치킨베이크로 간단히 점심을 함께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의 아내는 일하다 시장하면 데워 먹으라며 집에서 구운 따끈한 군고구마 5개를 비닐봉투에 담아 건네준다. 참 따뜻한 선물이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달려가는 우리는 절친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BFF이다. 베스트 프렌드 포에버. 신산한 이민생활에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카트를 밀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레바논 출신의 동종업계 거물인 샘과 오랜만에 마주쳤다. 북가주 최고 요지인 팔로알토 다운타운의 상용 부동산업계를 주름잡는 그는 나의 동갑내기 친구이다. 나이는 같지만 업력은 훨씬 오랜 이 친구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하나도 끈기, 둘도 끈기이다.
다리가 약간 불편해 빨리 걷지 못하는 그는 어떤 경우에도 낙담하거나 평정을 잃지 않고 끝까지 침착하고 차분하게 협상에 임한다. 중동출신 이민자가 상어와 늑대 우글거리는 실리콘 밸리의 최고 요충지에서 높은 명성을 유지하기까지 그가 겪었을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심에 나는 깊은 경의를 표한다.
2016년은 외국인 친구들이 찾아온 해이기도 하다.
미국의 호텔과 주유소,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기업체들을 호령하는 이민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인도인들이다. 실리콘밸리를 비롯, 가주 전역에 여러 호텔을 보유하고 있는 인도인 호텔리어가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어 왔다. 사업상의 영감을 교류하며 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서로 돕고 지내자는데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가 하면 며칠 전에는 오클랜드에서 성공적인 브런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태인 사업가가 전화를 걸어왔다. 비즈니스 마켓 플레이스 웹사이트에서 내 이름을 봤는데 어쩐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니 이 역시 얼마나 기쁜 일인가.
좋은 인연들을 만난 상서로운 기운을 신년 소망에 담아 간직하며 힘차게 떠오를 2017년 새헤 일출을 설렘 속에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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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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