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화 트렌드의 한 특징은 섞이고 절충하는 퓨젼(fusion)이다. 음식에서도, 옷에서도, 건축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발견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퓨젼은 남자가 여성스러운 옷을 입어도, 여자가 남자 같은 옷을 입어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들며 토속적인 문화 요소가 섞인 퓨젼 패션, 한옥과 서양식 건물의 장점을 절충한 퓨젼 빌딩, 퓨젼 레스토랑, 퓨젼 음악, 퓨젼 무용, 퓨젼 무술 퍼포먼스까지 퓨젼은 문화의 개념적 경계를 넘어 우리 일상 생활에 만연하게 자리잡았다.
서구 패션의 역사에 중국풍, 일본풍, 터키, 인디아, 러시아 등 동양의 미학이 영향을 미친 것은 17세기부터였는데 이러한 동양풍의 대유행 현상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부른다. 20세기에는 서구 디자이너에 의해서 뿐 아니라 역량을 갖춘 아시아 출신의 디자이너에 의해 아시아 미학의 뿌리가 세계 무대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이세이미야케가 잔 기계주름이 잡힌 소재로 동양의 전통인 평면재단에 기반을 둔 구성법을 이용한 디자인으로 서구 패션계에 충격을 준 것이 그 한 예이며, 세계패션무대에서의 아시아 열풍(Asian Craze)은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눈에 띄는 현상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스스로 전통복식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부터 ‘유카타-간단화된 기모노’가 젊은 세대 사이에 일상복으로 유행하고 있으며, 베트남에서는 ‘아오다이’가 열풍을 일으키며 부활하였고 학교 교복으로 지정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한국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 한복을 입고 고궁을 방문하고 전통문화를 즐기는 것이 유행이다. 문화이론가들은 이처럼 자국의 전통복식이 하나의 패션으로 규정되는 현상을 두고 아시아인들이 ‘스스로의 문화를 이국화, 동양화하고 있다(Self-Orientalization)’고 한다.
새해에도 우리의 전통문화가 오히려 이국적이고 새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재창조의 문화 사조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김민지(한국복식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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