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을 열흘 앞둔 10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고별 연설을 했다. 퇴임하는 미국 대통령은 대체로 백악관에서 퇴임 연설을 했지만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던 2008년과 2012년에 이어 퇴임 연설장소도 시카고를 택했다.
민주주의에 관한 그의 연설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국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닌,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로서 눈높이를 맞춘 채 연설을 이어갔다. “그의 연설은 나를 단순한 한 명의 투표자가 아닌, 민주주의의 참여자로 느끼게 했다”는 한 공영 라디오 청취자의 코멘트는 그의 연설이 얼마나 힘이 있는 것이었는지를 말해준다.
그는 연설을 통해 “인터넷에서 낯선 사람과 논쟁하는 것에 지쳤다면, 실생활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하려고 시도하라. 바로잡아야 할 게 있다면 신발끈을 졸라매고 조직화하라… 선출직 공직자에게 실망했다면, 당신을 드러내고, 뛰어들어라. 당신이 직접 출마하라. 끈기있게 계속하라”고 역설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도 잠깐 밝혔듯이 20대 초반에 시카고 일원에서 지역사회 운동가로 활동했었다. 당시 그는 시카고 남부의 저소득층 지역인 올트겔드 가든 커뮤니티에서 풀뿌리 운동을 전개했었다. 올트겔드 가든은 저 악명 높은 시카고 공영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는 곳으로, 주변의 공장과 제철소, 쓰레기 매립지 등 환경적 요인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암 발병률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곳이다.
당시 그는 거주자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이 공영주택 단지의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경청했다고 한다. 아마도 오바마 대통령 특유의 친화력과 공감 능력은 이 때 일취월장했을 것이다.
그는 연설에서 당시의 경험을 소개하며 “이 곳에서 신앙의 위력 그리고 일상에 지친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조용한 존엄을 보았다”면서 “변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함께 요구하는 데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 곳에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변화를 이뤄낸 것은 (대통령인) 나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능력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연설을 마무리했다.
8년 전 오바마가 취임할 당시에는 금융위기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안팎으로 악재가 산적했었다. 임기 내내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에 의해 자신의 정책이 가로 막혔지만 오바마는 단 한번도 품위를 잃지 않았고, 반대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했다. 공감과 소통의 정치능력은 그를 마지막 순간까지 ‘레임 덕’이 아닌 ‘마이티 덕’으로 만들었다.
그의 고별연설을 들으며 나는 대통령 오바마가 남긴 최고의 유산은 바로 ‘인간 오바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산을 남긴 어느 대통령을 떠올렸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남긴 공과는 평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의식을 버리고 민주국가에 걸맞은 인간의 얼굴을 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한국에서 매주 주말마다 촛불을 드는 사람들이 이 연설에서 더욱 큰 용기와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떠올랐다. 철옹성과 같았던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한국의 시민적 역량이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그동안 쌓여왔던 한국사회의 적폐를 청산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를 간절히 응원한다.
사족: 오바마의 고별연설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날 회견에서 러시아가 그의 사생활과 관련한 외설적인 자료를 갖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정보당국이 이를 그에게 보고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당선인은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 가짜 뉴스다”라면서 “나의 반대자들이, 역겨운 사람들이 가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일갈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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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국제 로타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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