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한국 소설로 알려진 <금오신화>는 매월당 김시습이 경주 남산에 은거하며 집필한 것입니다. 문학사적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금오신화>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소재가 기이하고 신비로워, 현대인이 읽기에도 서사의 매력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죽은 아내와의 재회(이생규장전), 염라대왕과의 만남과 대화(남염부주지), 용궁의 잔치에 초대된 이야기(용궁부연록), 선녀와의 하룻밤(취유부벽정기), 귀신과의 연애담(만복사저포기)과 같은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들의 결말은 모두 일관되게 비극적입니다.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난 주인공들이 영영 현실 세계와 타협하지 못하고 은둔하거나 죽음을 맞이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금오신화>의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행복할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전쟁고아, 학식은 높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는 선비, 망국의 한을 품은 청년, 전쟁의 비극 속에 아내를 잃은 남자, 세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천재이고, 모두 놀랍도록 작가인 김시습을 닮아 있습니다. 그는 희대의 천재였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이라는 충격적인 시국에 발광하고 맙니다. 비윤리적인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책을 불태우고 출가하여 유랑하다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작가를 쏙 빼 닮은 주인공들 역시 괴로운 현실보다 달콤한 잠깐의 꿈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을 등졌나 봅니다. 그것은 좋은 꿈이었을까요, 나쁜 꿈이었을까요? 오늘의 세계와 화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 실현 불가능한 꿈은 내일을 살 의욕마저 앗아가는 고통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이 실현 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노력’은 절대 보상받을 수 없는 ‘노오력’일 뿐이라니, 가슴 아픈 일입니다. 김시습은 <나의 삶>이라는 시 마지막 구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죽은 후 무덤에 표할 때에/ 꿈 속에 죽은 늙은이라 써 주시오/ 그러면 내 마음을 알아준 것이니/ 천 년 뒤에 내 속을 알아줄까.”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에게는 그렇다쳐도, 우리 청춘들에게 천 년 후는 너무 늦습니다. 올해 대선입니다. 좋은 꿈을 보여줄 누군가가 절실합니다.
<
이현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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