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덕분에 1년에 2번 정도 한복을 입는다. 최근에는 개량한복을 편하게 입고 있다. 보기에도 예쁘지만 입고 있는 동안도 참 편안하다.
어렸을 때부터 명절 때마다 입었던 한복이 무척 정겹다. 내가 중3때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평생을 한복만 입고 살으셨다. 시골에서 사시다 장남이 있는 서울로 오셨는데, 할아버지에게는 츄리닝이나 쟈켓은 물론 양복 1벌도 없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편한 기지바지에 티셔츠를 입으신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을 때에 맞게 한복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여름엔 속이 훤히 보이는 모시적삼에 하얀 고무신을 신으셨고 외출하실 때는 두루마기에 갓을 쓰기도 하고 중절모를 쓰기도 하셨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7, 80년대 초에는 개량한복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콧수염과 턱수염이 길어서 머리 따듯이 갖고 노는 버릇없이 굴었던 손녀를 귀찮아하지 않으셨다. 화롯불 옆에 두고 곰방대에 담뱃잎을 넣어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셨던 할아버지는 기침을 많이 하셨고, 기침 한번 하고 나면 무척이나 숨가빠하셨다. 이토록 기관지염이 심하신 할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큰 엿덩이를 깨어 밀가루에 묻혀 놓았고, 생강을 빻아 꿀에 재어서 차단스 위에 올려 놓은 것을 나는 어김없이 하나씩 조금씩 야금야금 먹었었다.
언젠가는 엿을 먹다가 튼튼하지 않은 내 이 하나가 끈적거리는 엿에 엉겨붙어 빠졌던 일이 있었고 이 일로 지금까지 엿을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 꿀에 재어 놓은 생강은 매운 맛이 달작지근하여 맛났다.
지금도 날씨가 쌀쌀해지면 나는 딸들을 위해 꿀에 생강을 재어 놓았다가 차로 마시게 한다. 유난히 겨울철에 입으시는 할아버지의 한복이 무거워 보이고 거추장스러워 보인다고 느꼈을 때, 할아버지는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신 채로 하늘나라 여행을 떠나셨다. 지금은 특별한 옷이 된 우리의 한복을 보면 나는 지금도 어김없이 한평생 한복을 입고 지내셨던 할아버지가 내 고향처럼 그리워진다.
미국에서 입는 한복이 더할나위없이 편안하고 예쁘게 느껴지도록 우리의 아이들에게 많이 보여 주고 싶고, 입혀 주고 싶은 마음만 갖고 있다. 그것은 한복에서 나오는 객관적인 선의 아름다움보다는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고 담겨져 있는 오래된 나의 정서 탓인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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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영(모퉁이돌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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