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내린 비 때문에 계속 미루다가 오랫만에 엘에이를 방문하게 되었다. 매번 다니던 길로만 다니다가 교회를 들러서 다른 길로 가게 되어 한번도 가지 않았던 46번 도로로 가게 되었다. 파소 로블이라는 도시에서부터 5번을 만나기 위해 46번을 달린다. 아름다운 길이다. 여름이면 누런 들판에 뜨거움으로 숨이 턱턱 막혔을 텐데, 오랫만에 장하게 내린 비로 푸른 융단이 펼쳐진다. 제주도의 성산 일출봉을 생각나게 하는 산도 보이고 늙은 사자의 옆구리 같았을 땅덩어리들이 어린시절 오르던 신록의 구릉이 되어 젊음을 과시한다.
오래전에 미국을 처음 방문한 뒤 아들에게 “한국이 좋아? 미국이 좋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사람들이 살았으면 좋겠어,” 아들의 대답이었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엘에이 방문을 즐겨한다. 미국에서 한국사람이 사는 것 같은 엘에이……Los Angeles라고 하지 않는다. 에레이라고 한다. 우리들끼리는…….
한국노래를 들으며 사방이 지평선으로 보이는 5번을 달린다. 거의 한국과 같은 가격에 냉면과 녹두부침을 이른 저녁으로 먹을 생각에 입엔 군침이 돌고, 우리는 마치 semi 고향을 방문하듯 들떠 있다. 우리는 이번에도 쓰지도 않았었는데 왠지 정이 들은 한국 물건이 가득찬 상점에서 대단한 것을 살 것처럼 눈을 번쩍이며 쇼핑을 할 것이다. 밥통을 열어보고 닫아보고 하다 때수건 두어장 사들고 나와 비가 계속 와서 찌뿌둥한 몸을 찜질방에서 풀 것이다.
다같이 한국 미용실에서 한국뉴스를 얘기하며 머리를 자르고 그리운 육촌오빠가 재가 되어 뿌려진 롱비치를 방문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단에 99센트 하는 아이템과 마치 한국마켓이 없는 동네에 사는 사람마냥 이것 저것으로 차를 채우고, 올라오는 길엔 엘에이 물가가 올랐다 아니다 음식이 어땠다 하며 우리끼리 품평을 해가며 마켓에서 산 김밥과 떡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그렇게 해야 우리들이 다시 샌드위치를 싸가지고 매일 출근하는 반복되는 일상이 한동안은 덜 지루하게 느껴져 힘내어 또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니까.
그리고는 지친 몸으로 잔뜩 사온 푸성귀들과 씨름을 한다. 데쳐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짠지를 담그고 김치를 버무리고….. 냉장고를 꽉 채우고 나서야 나의 에레이 방문은 단잠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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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정(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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