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실수’다. 누군가에게 평생 최고의 영예,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눈부신 순간을 실수로 망쳐버렸다. 89년이나 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벌어진 최악의 사태다. 작품상 수상자가 뒤바뀐 이유가 오스카 투표를 담당해온 글로벌 회계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파트너 회계사 브라이언 컬리넌이 방심한 탓으로 드러났다. 무대 뒤에서 밀봉된 빨간 봉투를 관리하던 그가 수상 번복 사태 3분전 ‘Best Actress Emma Stone backstage! #PWC’라는 제목으로 엠마 스톤의 사진을 트윗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책임소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가장 빛나야할 오스카 주인공 ‘문라이트’의 베리 젠킨스 감독은 타인들의 실수를 무마해주느라 바빴다. 축하를 받아야할 백스테이지에서도 ‘작품상을 받은 소감’보다는 ‘뒤죽박죽된 작품상 수상’에 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영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는 오스카 트로피를 안고도 단상에 올라 감사를 표하고 싶던 고마운 존재들을 언급할 기회를 빼앗겼다.
이렇게 올해 오스카는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둔 시상식으로 막을 내렸다. ‘오스카는 백인 중심적’이라는 공식을 깨려던 부단한 노력도, 시상식 진행자 지미 키멜이 남긴 위트 있는 표현 ‘흑인이 NASA를 구했고(영화 ’히든 피겨스‘) 백인들이 재즈를 살렸다’(영화 ‘라라랜드’)에도 역대 가장 말도 안 되는 시상식 엔딩에 시청률도 거의 최저였다.
현재 박스오피스 수입이 2,200만 달러에 불과한 영화 ‘문라이트’의 작품상 수상은 대이변이다. 영화입장료 10~18달러를 감안하면 ‘문라이트’는 미국인 150만 명쯤 관람했다. 3,290만 명으로 집계된 올해 오스카 시청자의 5%가 ‘문라이트’를 극장에서 봤다는 계산이다.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들이 상업적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좋은 영화가 꼭 관객들이 많이 보는 영화는 아니라지만 지난해 할리웃 영화계가 ‘흉작’이었음을 여지없이 증명했다.
2004년 110억 달러로 기록된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 3부작 완성편과 2011년 4억1,4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올린 ‘킹스 스피치’가 그나마 흥행한 작품상 수상작으로 회자된다. 지난해 수상작 ‘스포트라잇’이 8,800만 달러, ‘버드맨’ 1억300만 달러, ‘노예 12년’ 1억8,800만 달러, ‘아르고’ 2억3,200만 달러, ‘아티스트’ 1억3,300만 달러로 모두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이변이라면 2010년 작품상을 안은 전쟁 영화 ‘허트 라커’(The Hurt Locker)는 그해 경쟁작 ‘아바타’(Avatar)가 기록한 27억8,800만 달러와는 비교가 안 되는 4,900만 달러의 수입을 기록했다는 것. 그래도 입장료 인상을 감안할 때 문라이트보다 2~3배가 훨씬 넘는 수치다. 이번 사태로 ‘문라이트’를 찾아보는 관객들이 급증한다면 그나마 아카데미 제작진의 실수는 만회될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은 이도 불가능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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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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