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남편의 일터를 위해 딱히 잘 하지도 못하는 집안일만 하고 살았던 어촌 마을에서 나는 1주일에 한번씩 서울을 오가며 콧바람을 쐬게 되었다.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나의 병들어 가는 마음을 감지한 남편이 큰 결단을 내려 ‘공부’라는 것을 시작하도록 나를 떠밀은 것이다.
남편과 세 딸을 남겨 두고 나를 찾아 떠나는 나름 화려한 외출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새벽 첫 차로 서울을 향해 출발하는 내 가방 안에는 조금 무거운 책과 필기구, 고속버스표와 현금 900원. 다른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천원짜리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나에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새벽 바람 맞으며 떠나는 내 마음은 시원하고 홀가분한 그런 기분이었다.
멀리서 뭐라도 배워 보겠다고 오는 나를 위해 늘 도시락을 준비해 오시는 형님이 하필이면 이 날 오시지 않았다. 점심을 떼우기 위해 동전 900원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느라 무엇을 배웠는지 무슨 숙제를 해야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터미널 지하 분식점에서 계란없이 끓인 라면을 600원에 먹고 은행 자판기에서 150원에 커피를 마시고 몇 시간 후 150원에 자판커피 한번 더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마음이 조금 씁쓸했고, 눈물나도록 고팠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한 공부는 집을 떠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치였었다. 그후로 나의 외출은 더 많아졌다. 1주일에 1일에서 2일도 되고 3일도 되면서 가방은 더 무거워졌고 내 마음은 아주 많이 밝아지고 배불러지고 있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공부라는 것을 할수록 재미가 있어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이때였던 것이다. 그 외출은 어느덧 20여년 전 일이 되었다. 나는 900원밖에 없다고 낙심하지 않은 그때의 내가 무척 대견하다. 그 날 좋아하는 커피를 2번씩이나 먹었던 내 마음의 여유있음이 무척 예쁘기만 하다. 그 날의 900원은 내가 경험하였을 인생의 희로애락을 놓치지 않게 하였다.
언제나 아침이면 커피향이 좋아 커피를 내려 마신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달콤한 커피도 마신다. 누군가와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인생을 얘기하기도 한다. 남편에게 떠밀려 나를 찾아 떠났던 그때의 화려한 외출은 현실을 맞닥뜨리며 살 수 있도록 마음의 버팀목을 갖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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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영(모퉁이돌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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