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로부터 카톡으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에 대한 글을 받았다. 몇년 전 내가 혼자 이겨내기에는 매우 어려웠던 일에 처했을 때, 이 글귀를 묵상하며 “이것도 지나가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겠지”라고 위로하며 어려움을 극복해냈던 경험이 있어서 유심히 읽어보다가 이 글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지혜서 “마드라쉬”에 나오는 글로서 유태인들이 나치 학살 때에도 이 구절을 생각하며 잘 견뎌냈다고 한다. 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고 해가 눈부신 날도 있다. 기쁜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다. 80평생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나다보면 어떤 날인들 없겠는가? 내년이면 메디케어를 받는 나이가 되니, 지금까지 숨이 턱에 차도록 바쁘게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며 반성할 기회가 “여성의 창” 덕분에 주어졌다.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또 인생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면서, 앞만 바라보고 살아왔을까?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였더라? 내가 이화여고에 합격했을 때다.
내 뒷바라지를 해주셨던 이모님께서는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칭찬인지 뭔지 모를 멘트를 하시며 기뻐해 주셨다. 물론 이후에도 결혼하고 큰아들 낳았을 때 등등 기뻤던 때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럼 가장 슬펐던 때는? 대학생이던 하나밖에 없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다. 큰병을 앓지도 않았는데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하다가 병원의 실수로 마지막 인사 한마디 없이 세상을 하직했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 같았으면 아마도 병원을 고발하라고 주변에서 변호사들이 부추기겠지만 그때에는 다들 너무 순진했었다.
사람을 실수로 죽였어도아무 문제없이 잘 넘어가고 잘 살고들 있다. 친정어머니께서도 우리가 시끄럽게 한다고 죽은 애가 살아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조용히 넘어가자고 하셨다. 자식을 앞세운 모정을 그때에는 헤아리지 못했다. 이외에도 가슴아팠던 기억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들 또한 모두 지나갔다.
서정주님의 시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시 귀절처럼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 ”처럼 삶을 관조하며 아무리 인생의 파도가 덮쳐도 흔들림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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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례(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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