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이 갑자기 여성패션의 화두로 등장한 것은 한국의 경우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명품의 역사를 보면 명품 브랜드의 많은 가방들은 150년 전 혹은 그보다 전부터 장인 정신, 독창적 디자인과 재질로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의 로망이 되어왔다.
나의 친구는 가방을 질르고(이것저것 생각지 않고 용감하게 비싼 물건을 살 때 우리는 ‘질렀다’라고 한다) 난 뒤 남편에게 예쁘냐고 물어봐서 그렇다 하면 리턴을 하고 그게 뭐야? 그건 또 얼마줬어? 라고 물으면 들고 다닌단다. 또 어떤 친구는 명품가방을 남편 몰래 사기 위해 냉장고가 텅텅 비워질 때까지 생활비를 아껴 장만했다는 무용담도 들려준다.
잘 나가던 시절 장만한 유행 지난 낡은 명품가방을 아직도 들고다니는 사람, 아들이 사준 명품가방을 아끼려고 장롱 안에 고이 넣어 두고 짝퉁가방만 들고다니는 사람, 소박한 천가방을 들고 그 돈이면 아프리카에 굶는 애들 몇십 명을 더 도와줄 수 있다고 꿋꿋하게 외치는 사람……그러던 중 한 선배를 만났다.
아주 소박한 조그마한 가죽백을 옆으로 메고 다니는 그녀를 몇번 보진 않았지만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배어있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성실했던 삶이 주름 사이에 배어있는 귀여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날 동문회에서 모교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소감을 얘기했다. 그녀는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는데 어렵게 공부하여 졸업 후 유럽으로 유학을 갈 기회를 얻었다.
부푼 마음으로 그곳에 도착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너무나 가난하고 초라한 시골마을이였고 그곳의 부녀자들은 일을 하도 많이 해서 손이 너무나 억세고 컸단다. 그녀는 그곳의 작은 베이커리에서 머물며 학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장학금을 한국의 모교에서 받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 작은 마을의 부녀회에서 돈을 모아 후진국의 학생에게 기회를 준 것이였단다.
후에 그녀는 한국의 모교에 장학기금을 마련해 아프리카에서 자신과 같이 어려운 유학생을 뽑아 그들의 학비부터 생활비를 제공하고 마침내 그중 한 학생은 수석졸업의 영광도 가졌다고 한다. 이것 외에도 학교를 위해 기부를 꾸준히 하는 그녀는 항상 작고 낡은 가죽백을 옆으로 메고 다닌다.
그 선배를 만난 이후 나는 더이상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여보, **엄만 결혼 30주년 선물로 남편이 샤넬 빽 사줬대.”
<
전소정(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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