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에 변화가 있거나 경사가 생겼을 때 부모님께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은 지극히 한국인다운 발상이요, 효 사상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몹시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의 경사를 남에게 알리는 일은 어떨까? 예나 지금이나 남의 자식 자랑 듣는 것만큼 재미 없는 일도 없는데다가, 백 년 전의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갔다면, 요즘은 지구 세 바퀴 반을 돈다. 그래서 자식 자랑 좋아하는 부모님을 둔 나는 내 소식 알리기를 꺼리는 편이다. 과연 내가 부모의 생각만큼 잘난 자식인가 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나의 사생활을 보호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불황에 ‘남들 다 하는 취업’이라는 말이 무색하고, 지금 같은 경쟁 사회에 ‘남의 자식만큼 잘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부모 세대는 짐작도 하기 힘들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들어가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 외국어 한두개, 자격증은 기본. 힘들게 취업을 해도 출세는커녕 평생 직장 따위 보장되지 않는다.
더이상 예전 같은 고도 성장은 없고, 교묘하게 두터워진 유리천장 앞에 내가 들고 태어난 수저가 흙수저와 쇠수저 사이 어디쯤 되는가를 되물으며 절망한다. 심지어 사회 진출의 무대가 국제 사회로 확장된 21세기, 우리는 아무리 남보다 잘나 보려 해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런 자식의 고뇌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 동네에 자식 자랑을 하는 부모의 행동은 공포 그 자체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것이 ‘엄친아(혹은 엄친딸)’라는 말이 있다.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로, 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남의 집 아들 딸 소식에 비해 나는 늘 못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의 자조적 표현이다. 하지만 ‘엄친아’라고 해서 자신의 소식이 알려지는 것이 달가울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엄친아’ 역시 언제 도태될지 모를 자신의 위치에 끊임없는 불안을 느낄 것이다. 자신의 성취들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밖에 나가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부모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대놓고 ‘stop!’을 외치지 못해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할 것이다. 그는 아마도 평범한 우리 중 하나일 것이다.
다 키워놓은 자식 자랑도 못하냐며 서운해 할 부모 세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식은 부모와 별개의 인격체이고,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남에게 알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한국 사회의 유교적 위계 질서는 종종 손 아래 사람들에 대한 기본권 침해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 위험이 있는데, 자식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자식 자랑 역시 그런 예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자식의 삶은 부모 인생의 연장선이 아님을 알고, 사생활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남의 자식 자랑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즐거운 것은 자기 자신뿐일 테니, 공익을 위해서라도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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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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