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그리고 14시간이 넘는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이유야 어찌됐든 얼마 전까지 ‘국가지도자’라는 명예로운 지위를 누렸던 사람이 일순간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모습을 봐야 하는 건 씁쓸하고 불편하다.
박 전 대통령은 자리에서 파면되고 피의자 처지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미망과 착각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시간’과 ‘진실’을 운운하고 있다. 자기변호 전략으로만 보기엔 증세가 너무 심하다.
박근혜는 헌재 판결 직전까지도 탄핵 기각을 확신했던 것 같다. 재판관 4~5명만이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는 측근들의 정보보고가 올라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확신은 인터넷 TV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바깥 분위기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박근혜의 현실 인식은 청와대 생활 4년 내내 계속됐다.
거대한 권력의 중심부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려면 측근들이 필요하다. 측근들의 보고를 통해 정보를 얻고 그런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게 된다. 대부분 권력자들은 측근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좋은 측근을 두는 게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측근이라면 왜곡 없이 보고하는 것은 물론 필요할 경우 자기 자리를 걸고 쓴 소리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보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옆에는 이런 측근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온전히 박근혜 자신에게 있었다. 기분이 상한다 싶으면 레이저 눈빛을 쏘아대니 바른 소리하는 측근들은 남아나기 힘들었다. 좋은 측근을 고르고 곁에 둘 줄 아는 것도 권력자의 능력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세월호 사건 후 정부조직 개편 때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더니 박 전 대통령이 “그럼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의견을 내가 들어야 하느냐”며 역정을 내더라고 회고했다. 그는 얼마 안 있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측근과 참모가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었겠는가. 자리를 지키는 길은 침묵하거나 온갖 아부와 책략으로 적극 부역하는 길 밖에 없다. 투명인간처럼 존재감 없이 자리를 지킨 참모들, 그리고 진박-김기춘-조윤선 같은 측근들이 두 부류를 상징한다. 입 바른 소리가 아니라 입 발린 소리나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권력은 부패하고 제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권력자와 측근은 동전의 앞과 뒤 같은 관계이다. 제대로 된 측근을 고를 줄 모르는 권력자의 무능은 나쁜 측근들의 발호를 불러오고 이들의 발호는 권력자를 한층 더 무능하게 만든다. 세상을 바라보는 ‘유리창’이 되어야 할 측근들이 오히려 이를 가려버리는 ‘가림 막’이 되는 것이다. 권력자가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린 벌거숭이 바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측근을 보면 권력자가 보인다고들 하는 것이다. 측근의 수준은 권력자에게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의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를 알려면 그 측근을 보면 된다”고 했던 것이다. 박근혜의 실패는 그 자신의 독단과 무능, 그리고 측근들의 아부와 사악함이 함께 빚은 국가적 비극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청와대를 쫓겨난 후에도 여전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시사프로그램에 나왔던 한 평론가는 “이제부터라도 무엇을 판단할 때 가까운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의 견해를 경청하길 바란다”고 박근혜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고언에 귀 기울인다면 민심을 읽고 현실을 깨닫는데 약간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런 쓴 소리가 비단 박근혜와 청와대에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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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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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잘못하여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어떤일이 벌어지는지를 명명백백하게 알게 되었네요. 정신 바로 차리고 투표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