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싶지 않았고 오지 않았으면 했던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며칠 동안 무척이나 우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장모님을 떠나 보내고 아직도 괴로워하는 안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못난 자신이 나의 실체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한 번도 증명되지 않은 온유함이란 오직 가장된 속임수일 뿐이라는 잔느 귀용의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꽤나 괜찮고 온유한 사람이라는 나만 모르는 착각에 빠질 뻔했다. 온유해 지고자 하는 나에게 시험은 한꺼번에 들이닥쳐 편치 않은 마음중에 생업의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분노는 교만의 자식이고, 진짜 겸손한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도록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성경에서도 화를 내더라도 저녁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겸손의 옷만 자주 갈아 입었었나 보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인데, 그동안 내가 복음을 마가복음인 줄 착각하고 신앙생활을 해오지 않았나 돌이켜 본다. 어제부터 다시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후회와 자기연민에 빠졌던 자신을 추스려 본다. 그동안 무엇을 위하여 달려온 60년의 시간이었나.
남들은 그만하면 괜찮게 살아오지 않았냐며 위로의 말씀을 하지만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나 자신은 내게 주어진 인생의 모습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는가 하며 질책한다. 열심을 가장한 채 쾌락의 열매를 하나씩 따먹어 가며 또 다음날도 그 열매를 따먹기 위해 그냥 지내온 세월이었음을 자각하니, 하늘과 부모님께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태어남이 내 뜻과 무관하니 이 세상에 내어보낸 숨은 뜻이 분명히 있으리라. 나와 상관없이 육십년의 시간이 지나갔으니 그날도 어김없이 찾아오리라.
내 인생에 뜻과 영혼이 담겨 있지 않다면 나란 존재는 한낱 고깃덩어리에 신경세포가 퍼져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그 신경세포를 자극해서 나란 고깃덩어리를 전율케 하기 위해서 일하고 돈 벌며 그럭저럭 한 세상을 살아왔었나? 고날이 오면 썩어 없어지고 공중에 흩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을.
흑자는 만일 내가 훌륭한 삶을 살았다면 그 정신이 계승되어 내 이름이 영화롭게 될 것이라 하겠지만,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데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정신이란 것도 오직 살아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산 자들의 유희에 불과할 따름이 아니겠는가? 내 영혼이 살아있지 않다면 말이다.
항상 준비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겐 나이 육십을 인생의 꽃을 피우는 시작이라는 김형석 교수의 겸손은 본받을 삶의 자세다. 여기저기 불러 모아 한 판 크게 벌려볼까 했던 생각은 지금의 내 모습을 둘러보고는 다 없애버렸다.
그냥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그동안 딸아이를 더 챙기느라 상대적으로 소홀해서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가 져 있을 아들과 그리고 애들 엄마와 셋이서 근처 한식당에서 돌솥비빔밥에 찌개를 곁들여 먹으며 두 사람을 위로하고자 한다.
참, 딸아이는 주말에 지 서방과 강아지와 함께 제 딴에는 깜짝 방문하고는 다시 엘에이로 갔다.(아직도 비밀은 영원하다고 믿는 Daddy’s little girl이다.)4년 전부터 갈아입기 시작한 경건의 옷에 이제야 몸이 조금씩 적응되어 가는 것 같다. 머리도 굳고 관절도 조금씩 신호가 오지만 이제 다시 시작하여 70에 조그마한 꽃봉오리라도 피워보고자 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더 이상은 하나님과 돌아가신 선친께 죄를 짓지 않아야겠다. 약해진 육신과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께 의지한다.
하나님 아버지 항상 저와 함께 해주조서, 제 안에 있는 주님의 성령을 도말하지 말아 주소서.
2017년 3월 20일 환갑을 맞이하며….
<
정민규/샌 리앤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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