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주 구속 수감됐다. 호송차량을 탄 채 초췌한 얼굴로 구치소로 들어서는 박근혜의 모습을 지켜보며 대부분 국민들은 착잡함을 느꼈다. 자업자득에 사필귀정이긴 하지만 한 개인의 처절한 몰락을 지켜보는 일은 항상 마음을 불편하고 무겁게 만든다.
박근혜의 자업자득은 ‘끼리끼리’로부터 시작돼 ‘끼리끼리’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의 정치 생활을 쭉 관통해온 키워드는 원칙과 신뢰가 아니라 ‘끼리끼리’였다. 자신의 입맛에 맞고 색깔이 똑같은 인물들만 곁에 두었다.
탄핵을 당하고 대통령 직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탄핵재판 대리인단과 검찰 수사 변호인단까지 철저히 박근혜 색깔의 변호사들로 채워졌다. 변호인들이 아니라 친박 정치인들 같다는 세평이 뒤따랐다.
만약 박근혜가 냉철하게 법리를 따질 줄 아는 변호사들을 선임해 조력을 받았더라면 구속에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법률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다른 관점에서 보고 조언할 수 있는 인물들이 전혀 없었다. 냉정한 조언을 건네기는커녕 오히려 박근혜의 상황인식을 흐리는 ‘엑스맨’ 같은 존재들만 우글댔다.
끼리끼리는 위험하다. 그리고 비효율적이다. 현명한 판단을 저해한다. 다양한 형태의 투자클럽들의 수익을 분석한 한 연구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분석 결과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됐다. 구성원들끼리 사교적으로 끈끈하게 얽히고 공동사회적 관계로 맺어져 있을수록 수익률이 낮았다. 반면 이견과 논쟁이 일상화 된 클럽일수록 수익률이 확연히 높았다.
대학들이 인종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끼리끼리의 폐해와 비효율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방향이 조금 벗어나긴 하지만 트럼프의 폐쇄적인 이민정책에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된다.
비슷한 것끼리만 어울리면 편안할지는 모르지만 조직은 죽어간다. 견제와 균형이 상실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간다. 그러다 한 순간 벼랑 밑으로 추락한다. 박근혜의 정치가 바로 그런 길을 갔다.
인사부터 그랬다. 철저히 친박 극우성향의 특정지역 출신들을 썼다. 또 자신의 청와대 참모들도 군인들과 법조인 일색으로 꾸렸다. 인적 구성에서부터 사고와 배경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나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기 말에 절대 토 달지 않고 복종하는 인물들, 그리고 생각이 극단으로 치우쳐 있는 특정그룹의 인물들만 곁에 두었다.
그러니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의 개진과 토론이 사라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끼리끼리 조직에서는 이런 동조와 침묵이 한층 더 심화된다. 한쪽으로 심하게 닳아버린 편마모 타이어들을 달고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아슬아슬한 위험 주행을 계속하다 결국 대형 사고를 낸 것이다.
박근혜는 대선 캠페인 기간 내내 ‘100%의 대한민국’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쳤다, 애시 당초 그의 이런 공약을 믿은 국민은 별로 없었지만,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50~60%의 대한민국’만이라도 만들려 노력했다면 오늘의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는 3년 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눈물까지 보이면서 읽은 대국민 담화에서 “끼리끼리 문화가 참사를 일으켰다”며 이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국가적 참극을 초래한 것은 그 자신의 끼리끼리 집착증이었다. 박근혜는 끼리끼리라는 적폐의 산 표본이 됐다.
학연 지연 혈연에 더해 이제 이념으로까지 나뉘어져 있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적폐는 끼리끼리 문화다. 앞으로 적폐 청산을 주도해 갈 세력이 그 과정에서 이를 답습한다면 그 자신들 또한 청산대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근혜가 구속되던 날 세월호는 1081일간의 긴 수학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뭍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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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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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SNS 등 사회에서 쉽제 접할수 있는 소스가 많아진 만큼 투명하게 해야죠 이젠
한국은 학연, 혈연, 지연 빠고 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을 겁니다.
몇 사람이 주도하기보다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