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만에 햇살 가득한 봄 날씨는 그동안 누리던 우리의 게으름을 조롱이라도 하는 듯했다.우리는 햇살에 떠밀려 밖에 나가 남편은 웃자란 나무들을 정리하고 나는 잦은 비에 싱싱하게 퍼져 있는 잡초를 뽑았다. 토끼풀같이 생긴 노란꽃을 피우는 자잘한 잡초를 뽑으며 나는 중얼거린다. “미안하구나 참 예쁜 꽃을 피웠는데……너는 잡초라는구나.
어쩌다 잡초로 나서 눈에 띄면 뽑히는 신세가 되었을꼬, 눈치보며 꽃피우고 슬그머니 화초 옆에서 부스러기 물로 목마름을 채우고 열매 한번 제대로 못 맺어보는 안쓰러운 신세구나.” 뻐근해진 고개를 들어보니 얼마 전까지도 태탕하게 피었던 연분홍 복사꽃들이 푸른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으려고 꽃잎을 다 떨어뜨린 것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 첫 소절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국어선생님이 아닌 가정선생님이 비오는 날 이 시를 들려주셨다. 난 그때 그 의미도 잘 모르면서 이 시를 외웠다. 글씨를 예쁘게 썼던 나는 몇몇 조숙한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곤 했다.
내 짝궁이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려고 한다며 예쁜 편지지와 만년필을 주면서 연애편지의 대필을 원할 때 난 이 귀절을 써먹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나이가 되고 보니 한소절 한소절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얼룩과 같이 포개지면서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보며 자신은 낙화했던 요한,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주고 1명이라도 더 살려 내보려고 자신의 꽃잎을 떨어뜨린 선생님들, 수단 남부에 있는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곳의 젊은이들을 위해 상담자이자 친구로 수학선생이자 브라스밴드의 지휘자로 의사이자 사제로 의료와 교육활동을 펼쳤던 이태석 신부. 이들은 모두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가는, 가을의 풍성한 열매를 그리며 한잎한잎 꽃잎을 떨어뜨린 사람들이다.
가야 할 때를 알지 못해 낭패를 당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면서 나의 끈질긴 욕심의 꽃잎과 허다한 미움의 마른 꽃잎들을 떨어뜨려줄 사월의 훈풍을 기다린다. 열매 한번 제대로 못맺어 보는 잡초의 삶이 두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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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정(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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