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어느 곳에선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마당 한 구석 빗물 고인 콘크리트 바닥에 햇빛이 영롱하다. 겨우 살아 미미한 숨을 내쉬는 이상과 나를 끌고 가는 운명은 맞닿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절망감이 문득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렇게 지나가는가. 나의 삶은… . 아무 흔적도 없이.
이대로 가기싫다 떼쓰는 것 치고는 심하다싶게 아직 저 멀리 산 속 그늘에 남아있던 겨울 바람은 봄의 초록이 싱그러운 나무들과 언덕으로 세차게 몰아쳐 하얀 꽃 이파리들은 분분이 허공에 날리고 나뭇잎들은 뒷 뜰 외진 곳으로 흩어진다. 간 밤엔 레몬나무 연한 가지들을 몇개나 분질러 놓았다. 그 발버둥에 가슴 한 켠이 저려온다.
오랜 비가 집 안팎 화단과 언덕, 흙이 있는 모든 곳에 잡풀을 무성하게 키워내어 이 즈음 주변은 온통 초록으로 밝고 선명하다. 앙증맞은 노랑, 분홍꽃들이 그 초록 무더기들 위에서 수없이 나풀거린다. 이름이야 있겠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그래서 이름없는 꽃들이다. 툭하면 뽑혀질 잡초들이 피워낸 꽃들이다.
잡초는 왜 잡초일까를 생각한다. 저리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 화분 빈자리에 염치없이 들어앉아 있거나 담장 아래 혹은 무거운 돌 벤치 아래서 옹기종기 고개를 겨우 내밀고 햇빛을 쪼이고 있다. 흙이 없는 콘크리트 갈라진 틈새에서도 흙 먼지만으로도 삐죽삐죽 잘도 자란다.
그에 비하면 화단 좋은 자리에 턱하니 자리잡고 앉아 영양가 있는 흙에 햇빛도 맘껏 누리는 장미와 동백은 그 이파리들하며 가지 뻗는 품새가 영 시원찮다. 지난 겨울에 동백나무는 겨우 두어 송이 꽃을 피우고는 그마저도 시들기도 전에 툭하고 떨어져 버렸다. 그 것이 동백의 속성이라지만 속절없기 짝이없다. 장미 또한 지난 여름에 꽃 몇송이 달리는가 싶더니만 사슴의 공격으로 꽃과 잎을 모두 먹히고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듯하다. 게다가 두더지의 집요한 공격으로 뿌리마저 반쯤 절단이 났으니 오죽하랴. 그래도 말이다, 저 잡초들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저리 씩씩하고 악착같이 초록을 빛내고 노랑, 분홍 꽃 천지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사슴들이나 두더지들조차 잡초들엔 관심이 없는 듯 내버려두니 무슨 운명의 힘이 그들에게 작용하는 것일까. 공평하지가 않다. 운명이 늘 그렇듯… .
안그래도 심사가 뒤틀려 있던차에 잡초는 놓아두고 저 장미와 동백을 뽑아버릴까보다, 공연히 째려보다 앙상한 가지에 이제 막 돋아난 아주 작은 여린 잎새를 본다. 죽지 않으려 기를 쓰는 저 안간힘!
온 몸을 뜯기고 먹히고 하면서도 그 앙상한 몰골로 기어이 새 순을 피우고마는 생명력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 잡초는 마구 뽑혀도 다음 해가 되면 또다시 무성해지지만 동백이나 장미는 뽑아버리면 다신 살아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잡초는 죽는게 별일이 아닌거고 그래서 뽑히거나 말거나 더욱 무성한게다. 남이 보아주지 않아도, 기대하지 않아도 꽃을 피우는 잡초이고 싶은 나는 이제껏 저 동백이나 장미였었나… . 기대와 관심에 겨운… .
단 한 송이의 꽃을 피우더라도, 아니 단 한송이의 꽃도 피우지 못하더라도 나는 저 동백과 장미를 뽑지 않을 것이다. 대신 주변의 잡초를 뽑아주어야겠다. 운명은 그래서 공평해진다. 늘 그러하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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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자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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