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한 20대 한국계 여성이 인종차별적인 민박집 주인에게 숙박을 거부당하고 어두운 길가에서 울고 있었다. 지나가던 지역 언론인이 그녀를 인터뷰했고, 인터뷰 영상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 많은 이의 공분을 샀다. 나 역시 분노를 느낀 사람 중 하나였고, 피해 여성의 눈물 젖은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더욱 더 큰 분노를 부른 것은 민박집 주인의 한마디였다. “It’s why we have Trump.”
선거 결과가 인종차별을 정당화해 주기라도 한단 말인가?나는 요즘 플라톤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다. 새내기 시절, 첫 철학 전공 수업에서 그를 만난 이래로 지금처럼 그가 그리워 본 적이 없다. 그건 아마도 내가 요즘 그의 생각들에 공감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국가와 사회에 몹시도 실망한 인간이었다. 플라톤이 사랑하는 스승, 소크라테스를 잃은 것은 아테네의 정치적 혼란기였다. 그 와중에 아테네의 시민들은 참으로 민주적이게도 투표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결정한다.
소크라테스의 주요 죄목은 ‘젊은이들이 정치 지도자들을 존경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끈질기게 허위와 무지를 고발하는 데 인생을 바쳤던 그의 행적을 고려해보면 사형선고의 경위가 이해가 간다. 분명 당시의 아테네에는 존경받을 자격 없는 정치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자신의 정치 철학을 집대성한 <국가>에서 직접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수의 이름으로 불의가 허용되는 것을 목격했으니, 어리석은 자들에게까지 권력을 나누어 주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질 수밖에(문제의 민박집 주인을 보라).
하지만 그가 시민의 정치 참여에 모두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식 있는 시민이라면 반드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에 대해 무관심했을 때의 가장 무서운 댓가는 우리보다 못한 자들에게 지배당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 행사를 게을리한 댓가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보다 못한 자들이 믿는 가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의 민박집 주인이 선거 결과와 인종차별의 승리를 동일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인권의 역사가 100년쯤 후퇴해 버릴 위기를 맞이한 지금, 플라톤의 경고가 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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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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