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난방이 안 되어 추위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날이 밝자 남편은 보일러 닥터를 수소문해서 당장 고치라고 당부하고 출근하였다. 일 년도 안 된 새집인데 벌써 고장 날 리는 없겠다 싶어 나는 천정으로 올라가 보일러를 살펴보았다. 내 생각대로 보일러는 외관을 조이는 나사 하나가 빠져서 접촉 불량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나사만 조여주자 보일러는 원활하게 돌아가며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다. 이 밖에도 나는 멈춰선 분쇄기를 재작동시키거나 스모크 센서의 전지를 갈아 끼우는 일 등, 집안의 자질구레한 수리를 내가 직접 한다.
게다가 남편은 조립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조립해야 하는 물건을 사면 조립도 내가 한다. 나사를 조이는 힘이 좋아야 튼튼하게 조립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하다 보니 얼마 못 가 삐걱거리기 일쑤지만, 남편이 조립했던 농구대를 보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남편에게 맡기지 않는다. 남편은 매뉴얼을 읽지 않고 농구대를 조립하다 거꾸로 해버려 다시 빼지도 못하고 이상한 형태의 농구대로 사용했던 적이 있다.
지난해, 남편은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집 단장을 하겠다며 혼자서 앞뜰을 손댔다가 잔디밭을 망쳐놓기도 했다. 그동안 절수정책 때문에 네집 내집 할 것 없이 잔디가 많이 죽었는데 남편은 직사각형 잔디 모종을 사와서 그냥 모종 채 땅 위에 덮어 놓았다. 잔디 모종은 그대로 말라서 잔디밭은 더욱 흉해졌고 결국 HOA로부터 앞뜰을 단장하라는 경고장을 받았다. 나는 우기에 잔디밭을 직접 보수하기로 작정하고 뒤뜰의 잔디를 조금씩 떠다 일일이 앞뜰의 죽은 잔디를 메꾸었다. 겨우내 툭하면 내리던 비에 옮겨진 잔디는 잘 자라주어 나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잔디밭을 재생했다.
이쯤 되니 남편은 나를 맥가이버 희원이라고 부르며 추켜세운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남편만이 할 수 있는 전용 수리 물건이 있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산 세탁기는 지금 22년째 쓰고 있는데, 수명이 다해 가는지 툭하면 과부하에 걸려 퓨즈가 나가고 있다. 남편이 아니었으면 고장 난 세탁기로 간주하고 벌써 새것으로 바꾸었을 텐데, 다행히 남편이 전기를 아는 사람이라 퓨즈만 갈아서 사용하고 있다. 멈춰선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의기양양해 하는 남편에게 맥가이버 별명을 돌려주며 역시 집안에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기를 팍팍 세워주었다.
<김희원(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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