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봉사회에서 클라이언트를 대변하여 이런저런 일을 해결하다 보면 15년 전의 생각이 많이 난다. 도움을 청하러 오는 클라이언트들의 대부분은 영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우편물이 정부에서 온 중요한 편지인지, 중요한 척하는 광고 편지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봉사회를 찾는다. “내가 여기 오래 살았어도 무식해서 영어를 아직 못해…”라며 편지를 내밀기도 하고,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아시지만, 문제해결을 못 하겠기에 가져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나는 영어가 어렵던 때가 참 많이 떠오른다. 많은사람이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줄 알지만 사실 나는 어릴 때 이민을 왔다.
미국 학교에 갔던 첫날, 여기서는 교사들이 아닌 학생들이 수업마다 교실을 옮겨 다닌다는 것을 몰랐기에 첫 교시가 끝나고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다음 수업을 못 찾아가 복도에서 쩔쩔매던 기억. 편의점에 뭐 하나 사러 가도 혹시나 점원이 미국인 특유의 small talk로 내가 도움은 받았는지, 오늘 어떻게 지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면 답을 못할 것을 걱정하며 마음을 졸였던 기억. 수업 중 돌아가며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는 대충 얼버무려 발음하며 읽었던 부끄러웠던 기억. 교사가 학교 유일한 아시안이던 나에게 악수 대신 합장을 했을 때, 말로는 못하고 속으로만 “나 교회 다니는 데……” 했던 기억. 편지를 내밀며 부끄러워하시는 얼굴과 무슨 내용인지 몰라 불안한 손은 여러모로 답답하여 좌절하고 분통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문득 떠오르게 한다.
지금은 한국어보다 영어로 상황을 알아내고 불친절과 부당함에 대응하고 따지는 것이 편하다. 클라이언트들의 답답함을 해결해 드렸을 때 꼭 예전의 나를 대변한 듯 속이 후련하다.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나의 의견을 말하고 나 자신을 대표할 수 있다는 것으로 많은 자유와 힘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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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은씨는 UC버클리에서 심리학과 공중보건학 전공으로 졸업했으며 현재 이스트베이한인봉사회(KCCEB)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이민통합증진과 소셜서비스를 제공하고 노인정신건강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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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은 (KCCEB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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