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꽃들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신다. 이 시간은 나에겐 참 소중한 시간이다. 몇 해동안 심어둔 꽃들이 이제는 자기들이 스스로 이 봄에도 다시 피어나 우리는 서로 눈맞춤을 하며 반가워 한다.
근데 올 봄에 다시 심은 펜지꽃과 콜롬비안꽃의 꽃잎들이 많이 상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슬러그 아니면 달팽이가 먹어 버린 것이다. 슬그머니 화가 난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이쁜 꽃들만 먹나? 잎사귀들을 먹지....
달팽이와 슬러그 먹이들을 꽃들 주위에 잔뜩 뿌리고 나선 잠시만 눈을 떼어도 자라나는 잡초풀들을 막 뽑아내며, 꽃들의 천적들 잡이를 시작한다. 이젠 이전처럼 자주 잡초도 뽑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늙고 게을러지는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득 내 마음의 잡초들에게도, 그 속에 숨어있는 달팽이와 슬러그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며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게으름을 생각하게 한다.
꽃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참으로 많은 달팽이를 죽여야 했다. 이젠 달팽이들은 거의 전멸을 했고 슬러그들만이 숨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몇 달동안 피기를 기다리던 꽃의 봉오리가 피기도 전에 한부분이 먹혀 버린 걸 볼 때는 일망타진을 하겠다고 결심하며 잡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잡아 버리면 이 꽃은 먹혀 버린 부분은 없지만 그래도 피어난다. 슬러그를 잡아내면 손으로 죽일 수도 없고 잔인하게 밟아서 죽이기가 일쑤다. 그럴 땐 나의 마음도 힘들다. 슬러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도 먹고 살아야지요,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왜 꽃을 먹냐고? 잎사귀들을 먹으면 되잖아! 그럼 걔들은 또 ‘우리도 맛있는 것 먹고 싶은 본성이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래 너희들은 보드라운 꽃들을 먹지, 그리고 향이 있거나 두꺼운 꽃잎은 먹지 않지, 꽃을 가꾸기 시작한 후 나는 달팽이와 슬러그의 식성을 알게 되었다.
다시 걔들은 나에게 향변한다. 당신이 이땅의 주인이요? 나와 당신은 똑같이 이 땅에 사는 존재일 뿐이지요, 한 대지를 밟고 사는....왜 꽃을 위해 나를 죽이나요? 이 꽃은 내가 사서 심고 키웠어, 그리고 꽃들은 아름답잖아. 그런데 그가 말한다 아름다움과 추는 둘이 아니라오, 둘은 다른게 아니라오, 둘은 당신 마음 속에 함께 있지요.
달팽이와 슬러그가 죽어가며 목숨을 걸고 나를 가르치고 있다. 그래 난 언제 이 모든 것을 보듬어 안을 수가 있을까?
<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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