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고 지내던 전 선생님이 식사 등 일상을 지원해 주는 양로원에 둥지를 트셨다. 선생님은 한국 공군에 태권도를 도입하셨고 한국 최초로 해외 건설시장을 개척하신 분으로, 은퇴 후에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 정보를 신문에 기고하며 미주 한인 사회와 나누는 것을 소명으로 사셨다.
80세가 넘어 양로원에 가는 일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나, 체격 좋고 활발하게 돌아다닐 만큼 건강하던 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직접 뵙고 보니 충격이 컸다. 노인이 오래 살려면 ‘연골’, ‘할 일’ ‘인간관계’가 관건이라는데,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만난 대부분의 노인은 삶에 무릎이 닳았는지 휠체어를 타고 몸은 구부정했다. 매일 한 노래만 부른다는 분, 매일 45도 각도로 쓰러져 조는 분. 탁자며 벽만 계속 닦는 분..., 방전된 기억으로 세상과 등진 채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낯선 모습은, 나의 나이 듦에 대한 처량한 생각을 구체화시키며 의기소침하게 했다.
양로원에 가보니 아름다운 노년, 지혜의 보고 등 나이 드는 것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거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느니 내 나이가 어떠냐고 하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나이 든다는 것, 늙는다는 것은 걷기도 생각도 안 되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가는 슬픈 과정이다. 누군가 찾아주기를, 말동무 되어주기를 기다리는 무기력한 외톨이, 적적한 아웃사이더가 되는 일, 그래서일까 그새 선생님 보폭도 좁아보였다.
선생님이 운전대까지 반납하며 삭막한 이곳에 바삐 뿌리내린 이유가 궁금했다.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요.” 생각은 그래도 실천은 힘든데, 상처한 후 불안한 자신과 바쁜 자녀의 한계를 인정하며 자녀로부터 독립을 택해 ‘자발적 감금’을 하신 것이다.
선생님은 미주 한인 노인 문제에 대한 정보가 없다며 글 쓰는 일 즉, ‘할 일’에 대한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신다. 속 시원히 말할 수 없는 침묵의 공간에 살며 좋아하던 외식도 할 수 없는데, 타인에게 시선 돌리며 자신의 삶에 물꼬를 트는 여유와 평정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보는 이는 서글퍼도 아들을 감싸며 인생 경주의 말미를 자신의 의지로 깔끔히 매듭지은 선생님, 남은 삶도 기품 있고 당당하게 사시길 기원하며, 머잖아 내가 마주할 외로움과 조우하듯 선생님을 자주 찾아뵐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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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북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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