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언니가 아이의 두 살 생일선물을 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한국 전래동화책을 보내달라고 했다. 받자마자 아이에게 그림만 보게 하고, 신경을 안 쓴 지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가 내용이 궁금한지 몇 권을 가져와 무릎에 앉았다.
“선녀와 나뭇꾼”을 읽어보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나뭇꾼이 쫓기던 사슴을 도와주고 사슴이 알려준 대로 선녀의 옷을 숨겨 결혼한다. 선녀가 어느 날 날개옷을 보게 되고, 아이들과 하늘로 올라간다. 쫓아 올라간 나뭇꾼은 지상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내려왔다가 하늘로 다시 가지 못해 닭이 되어 평생 울부짖는 비극이다.
자세한 내용이 어찌 되었든 이 이야기를 어른이 되어 읽어보니 어이가 없다. 여자들 멱 감는데 숨어서 보고 있다가 옷을 훔친 절도범이자 파렴치한이 지상에서 그 여자를 속박한다. 심지어 여자가 고향으로 돌아가자 쫓아간다. 여자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고향이 그리웠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옷을 입고 휙 날아가 버렸을까?
아이에게 읽어주다 보니 이걸 왜 읽고 있나 싶었다. 많은 한국 전래동화가 그렇듯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나뭇꾼의 착함을 강조한다. 나뭇꾼은 하늘에 올라갔다가 어머니가 걱정되어 내려오기도 한다. 효심은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나머지 내용들은 다소 잘못 해석되기 쉬운 설정들이다.
대학 때 필수 교양으로 들었던 수업 내용 중, 동화책 다시 읽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자란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신데렐라 등에서는 너무나 아름답고 예쁜 미녀들이 백마 탄 왕자들에 의해 구해지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아름다운 이야기로 알고 자란 나에게, 이 수업은 동화책 내용이 얼마나 현대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인지 알게 해 주었고, 제대로 된 교훈을 찾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립적인 여성상보다는 의존적인 여성상을 심어주며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내용들은 다행히 많은 작가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탄생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예전 그대로의 동화책을 제대로된 해석없이 읽고 있다.
아이의 책꽂이에서 십여 권의 어이없는 동화책들을 뽑아냈다. 시간을 투자하여 아마존에서 재해석된 책들을 구매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양식이 될 만한 책들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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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고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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