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내 생일도 있지만, 어머니의 날도 있으며, 할아버지의 생신이 들어있기도 하다. 키우던 고양이가 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달이기도 하다. 어머니 날에는 지난해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우리 엄마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 나를 자주 돌보아주셨으니 또 다른 엄마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할머니가 해주셨던 호박잎 쌈과 된장찌개다. 초등학생 입맛에 단 걸 좋아하고 양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할머니가 단 한 번 해주셨던 거의 15년 전 그 밥상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호박잎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내가 해 먹어 보고 싶지만, 할머니가 해주었던 그 맛은 아닐 것이다.
집에서 주부 생활을 하시던 할머니는 집이 답답하셨던 것 같다. 어린 나를 데리고 교회 구역 예배를 많이 다니셨다. 전화를 받을 땐 우아하게 목소리 톤이 한껏 올라가셨다. 사진기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내 사진을 찍어주시기도 했다. 배웠던 미용기술로 내 머리를 자르기도 하셨다. 틈틈이 재봉과 뜨개질도 하셨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젊을 때부터 쭉 사회 생활을 하셨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할머니는 어떤 다른 사람이었을까.
자라면서 가족으로만 보아왔던, 어른으로만 알아왔던 사람들을 마치 제삼자가 된 듯 다시 성인으로서 알게 된다. 그 사람들의 성격을 알게 되고 장점과 단점도 보인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어린 시절과 지난 경험들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떤 어린아이였을까. 어떤 학생이였고 어떤 연애를 해보았을까. 어떤 경험들이 모여 내가 아는 지금의 사람이 되었을까. 돌아가시기 전 오랜 기간 아프셨기에 성인이 되어 할머니를 다시 한번 알게 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나를 돌보아주시던 그때의 활발하던 할머니의 기억은 희미해진다. 대화 한번 제대로 못하고 돌보아주심에 제대로 감사드리지 못한 것은 할머니를 기억할 때마다 생각날 것이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5월은 싱숭생숭하다. 보통 가볍게 지나가는 생일이지만 올해는 친구들과 여러 축하 자리를 가지며 즐겁게 지냈다. 생일같이 좋은 날을 함께 축하해주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기에 감사하고, 그래서 더 생각나는 것은 좋은 날을 더는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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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은(KCCEB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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