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가 어떻게 여기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반평생을 보내고 나서 어떻게 미국의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조그만 도시 ‘샌리엔드로’라는 곳에 있는 자그마한 집에 노란 색으로 칠한 방안에 이렇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인생을 사는 듯한 느낌....
한국의 삶과 지금의 삶 사이에는 파란 색이 있다. 아주 많은 파란 색이,두 삶을 격리시키는 푸르고 깊은 바다가 보인다.
나는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방을 7년 전 노란 색으로 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푸른 색으로 일관하던 그림을 그리던 내가 왜 갑자기 온 벽을 노란 색으로 칠했을까? 또 노란 색 식탁보를 사서 테이블을 덮고 만족해하기도 했다.
노란 색으로 특히 유명한 화가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 반 고호(네델란드1853-1890)일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빛나는 색 이면의 어두움, 그래서 빛에 가장 가까운 색인 노랑의 이면에는 짙은 어두움이 있는 것이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했던 그였지만 어둠을 딛고 빛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정과 함께 누구보다도 현란하게 빛나는 노란 색을 표현해내었다.
노란 밀밭을 그린 풍경들, 해바라기, 노란 방, 노란 집, 뿐만 아니라 인물이나 정물화의 배경에도 고호는 노란 색 쓰기를 좋아했다. 지혜, 이해, 직관, 기쁨, 명철 등의 보편적 의미가 있는 노란 색을, 오히려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의 그였지만 그는 이 색을 사랑했고 거의 모든 그림의 곳곳에 표현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그가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의 예술세계는 빛으로 가고자 열망하였지만 그렇게 이룰 수 없었던 그의 삶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삶이 어둠이라면 그의 예술은 빛이며 그는 작품 속에서 진정 행복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이유로 비록 삶을 비극적으로 끝낸 그이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호의 그림과 그 사람을 좋아한다. 그의 순수하고 고결한 인간성은 현실 세계를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그의 그림 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
나는 고호와 함께 나의 파랑을 잠시 밀어내고, 나를 외부로 밀어 내고자 하는 듯 잠시 노랑을 선택했었다. 그리고 그때 방을 노란 색으로 칠하고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창 앞에 있는 나를 떠올린다.
<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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