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는 2년 정도 사용하면 배터리 등 문제가 생긴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 전화기가 딱 2년만에 충전이 안 되더니 슬그머니 전원이 꺼져버렸다. 전화기 속 사진은 어딘가로 옮겨 놓으라는 충고를 귓등으로도 안 들었는데, 새 전화기를 구입하려 간 곳에서 몇 시간이나 애를 써도 전화기 속 기록들을 살려내지 못하니 남편보다 가깝게 지낸 관계가 무색해졌다. 가족이나 친지들과의 대화 단절로 졸지에 외딴 섬이 된 것보다 주고받았던 말이 올올이 그립고, 무엇보다 곱씹을수록 미화되고 중하게 필터링 된 2년의 추억을 담은 사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기쁨이나 감동, 감격에도 오리지널이 있어서 처음이 중요한데, 첫 손자의 새까만 머리칼과 발그스레한 볼, 외손자들의 천진한 웃음과 포즈, 재롱이 알록달록 색채를 잃은 듯 기운이 빠진다. 누르기만 해도 예술 작품이던 신비한 빛의 향연 앤탤럽 캐년, 카메라 앞에만 서면 치즈와 김치를 외치던 언니들과의 여행, 조정래 소설가와 등등...어제 일처럼 불쑥불쑥 떠오르는 영상들을 복구하느라 기억의 잔상들을 끌어 모은다. 사진 찍는 일조차 복잡하게 여기는 기계치가 발탁된 장면이고 보면 어느 하나 애정 없이 찍고 찍힌 것은 없을 터, 정제된 압축파일이 기억에서조차 삭제될까 염려스럽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있고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도 있다. 세월에 풍화되지 않는 사진은 하찮은 기억도 추억으로 만들고 날개를 달아준다. 엄숙한 증명사진도 사연을 들려주고 당시의 아픔은 오늘의 고통을 넘어 감회로 다가오며 진한 그리움조차 길동무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울컥할 때는 부모님을 만나고, 학창시절의 잔잔한 우정을 떠올리게 하며, 주머니는 비어도 낭만이 가득했던 청춘을 살려내고, 서울의 어느 거리만 보아도 향수에 젖게 하는 사진, 과거가 마치 숨 쉬는 생명체처럼 우리와 함께 호흡한다.
시간을 넘나들며 내 인생 스토리를 담아온 사진들, 추억의 일등공신이지만 마지막 순간 챙겨갈 것은 추억뿐이다. 일생에 2년쯤 사진이 비었다고 열 낼 일은 아니나 미련이 남는 것은, 잃은 후 떠난 후 소중함을 알게 된 탓이리라. “잘 가라. 사진들아!” 옛 것 주위를 맴돌며 새 전화기와 2년 시한부 살림을 차린다.
<김영란(북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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