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과 능력보다 뒷거래가 판치는 한국의 뇌물문화 근절을 위해, 전 대법관 김영란이 추진한 ‘부정청탁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김영란 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바람에 이름이 같은 나 또한 유명해진 느낌이다. 최근에 만나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참으로 대단하다는 농담도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도 내 이름은 안 잊을 거라고 한다.
이름에는 그동안 자기가 살아온 인생관이나 가치관, 세계관을 담고 있어서 이름은 바로 그 사람이다. 성격과 인격까지 드러내니 지극히 개인적인 그릇 같으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살아생전 이름으로 평가되어 사람의 수명보다 길고 공적인 것이 바로 이름이다.
자식이 태어나면 부모님은 어떻게 하면 자식에 대한 바람과 애정이 담긴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지을까 고심하고, 자식은 고유한 이름을 얻으면서 세상에서 존재와 가치 그리고 의미를 얻게 된다. 아버지 또한 내게 영란이라는 야심작(?)을 지어주셨다. 머리가 매우 똑똑하고 총명하다는 뜻인 영리할 영(伶)이라는 아무도 쓰지 않는 나로서는 획기적으로 생각되는 한문에다, 사군자 중에서도 고고한 자태로 은은한 향기를 풍겨 귀한 여인에 비유되는 난초(蘭)란 격조 높은 꽃이 들어간 이름이다.
아버지는 내게 평생선물로 김이라는 성(性)을 물려주시고 예쁜 이름도 지어주셨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향내 나는 삶을 살라는 아버지의 당부는, 사는 동안 정신적 정서적 안정과 자존감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했다. 지혜와 향기야말로 나이 들수록 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아버지날이 다가온다. 어수선한 시절, 평생을 긴장하며 사셨을 아버지! 잘생기고 키 크셨던 아버지의 온화한 표정과 인자하신 말투를 떠올리면 슬픔이 밀려오고, 애틋하게 사랑받은 느낌은 행복하게 아프다. 뒷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서글픈 감정을, 세상에 없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기억하는 고통을 어찌 짧은 글로 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추억하며 기리는 일은 아버지가 부여한 이름값에 근접하도록 명예(名譽)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무의식 속에 뿌리내린 아버지란 큰 이름을 회상하며 삶의 연륜만큼 단단해진 나의 분신 내 이름을 불러본다. 아버지의 사랑이 따스하게 만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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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북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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