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보르네오 코끼리에 관한 다큐를 한 편 보았다. 코끼리는 암컷 20여 마리가 한 무리를 이루어 대가족으로 생활하고, 수컷은 따로 독립생활을 한다. 현재 1500마리밖에 남지 않아서 보호해야 할 멸종위기 종이다.
건기가 되어 먹이가 부족한 암컷 무리들이 수컷으로부터 먹이터에 대한 정보를 듣고 열대우림을 가로지르는 키나바탕강을 건너기로 한다. 폭이 200m이고 수심이 3m여서 물살에 휩쓸리거나 익사할 수도 있고, 곤경에 빠지는 새끼를 노리는 바다악어가 득실대며 포진하고 있어 생명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다. 수컷은 안전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솔선수범하여 먼저 강을 건너갔다.
아장거리는 새끼 코끼리는 어떻게 건너갈까 내심 궁금했는데, 어미와 이모가 새끼를 가운데 끼우고 떠내려가지 않게 밀착하고, 가라앉으려고 할 때마다 어깨로 밀어 올렸다. 가장 먼저 강을 건넜던 수컷이 목숨을 걸고 다시 돌아가는 장면에 의구심을 가졌는데, 그것은 동료를 도우려는 순수한 이타적 행동의 발로였다. 두려워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한 무리를 인솔하여 다시 강을 건너는 장면은 깊은 감동이었다.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다시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그리고 나를 위하여 강을 다시 건너와 준 고마운 얼굴들이 떠올랐다.
3년 전 딸이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미국 사는 나를 대신하여 물심양면 도와준 여동생이 먼저 생각났다. 가전제품, 이바지 음식, 폐백 음식과 소품까지 일일이 챙겨주고, 고향에서 결혼식에 오실 친척분들을 위해서 버스를 빌리고, 차에서 드실 음식까지 모두 준비하여 안전하게 강남의 결혼식장으로 모셔왔다. 신혼집에 음식까지 택배로 보내줘서 냉장고를 채워주기까지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함석헌 선생의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가 생각났다. 그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한 사람. 힘들 때 내 이야기를 풀어 놓아도 초라하거나 부끄럽지 않고 기꺼이 들어줄 그 한 사람이 누구일까를 늘 생각했었는데, 한 사람으로 한정 지울 수가 없어서 감사했다.
누군가를 위하여 다시 강을 건널 수 있는 깊은 사랑과 용기를, 도움을 요청 받지 않아도 베풀 수 있는 자비를 보르네오 코끼리를 통해서 다시 생각하면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그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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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홍(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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