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기억은 아주 단순해서 이른 아침에 반 시간은 족히 걸리는 가게에 걸어가셨다가 거의 자정이 돼서야 오셨다. 늘 반복된 생활을 하시는 시간이기에 아버지와 같이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약주는 친구분과 가끔 하셨지만, 담배는 거의 하루 한 갑 이상을 피우셨다.
담배도 필터가 없는 독한 ‘백양’ 담배만 즐겨 피우시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 생활이신 듯 느껴졌다. 그때 당시에는 국민 소득이 백 불이 안 되던 시절이니 아버지의 생활은 어려운 가운데 가족 부양에 온 힘을 기울일 때였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삼천리’ 자전거를 사 오셨다. 그 시절은 자동차가 있는 집은 거의 없었고 새 자전거가 있는 집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왜 그리 기분이 좋은지 잠도 오지 않고 자전거 생각에 거의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버지가 출근하시기 전인 다섯시쯤에 일어나 가슴이 쿵덕거리는 것을 참아가며 자전거를 끌고 집 밖에 있는 청계천 '아스팔트' 길로 나왔다. 열 살인 내가 자전거를 감당하기에는 무척 힘이 들었으나 한번 타고픈 생각에 안장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다리 한쪽을 중간에 끼워서 어설프게 끌고 다니고 있을 때였다.
저쪽에서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형아가 오더니 “야! 새 자전거 근사하다. 형아 한번 타게 해줄래?” “ 저기 한 바퀴만 돌다 올 테니까” 순진한 나는 순순히 운전대를 넘겨 주었다. 잠시 후, 올 시간이 넘었는데 나타나지 않고 마음은 불안해진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결국 그 나쁜 형아는 자전거와 함께 뺑소니쳐 버렸다.
태어나서 팔, 다리에 힘이 '쭈욱' 빠져 보기는 그날이 처음이다. 아빠한테 '꿀밤' 한 대 맞고 자란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분명 혼이 날 테니 하늘이 노래진다. 한 시간가량 어슬렁거리다 마음을 추스르고 대문을 들어섰다. 잠시 후 할머니께서 "자전거는?" 하시고 묻는데 나는 얼굴만 찡그리고 서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하실까 걱정이 태산인데 잠시 후 그 사실을 아시고 "어머니! 무심이 밥 주지 마세요!" 딱 한 마디 하시고 걸어서 출근하셨다. 그때 나의 기분은 날아갈 듯했고 과연 우리 아빠 최고였다.
아빠는 주위에서 흔히 법이 없어도 살만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어 왔지만, 참! 바보 아빠다.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아 주셨으면 이토록 사무치게 그립지는 않았을 텐데….
아버지의 날을 맞아 말해본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
방무심/프리몬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