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의 색은 푸름을 지님으로서 바다와 만나고 저녁녘에 하나 둘 켜지는 불빛들은 바다 위의 반짝이는 은빛햇살과 하나가 된다. 어두움이 모든 형태를 삼켜버린 후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불빛들이 곱게 반짝일 때 밤의 색은 바다의 울트라마린 불루색으로 빛나면서 나와 저 밖을 가르고 있는 창문을 부수어 버리고서 내 마음속으로 밀리어 온다.”이 글은 미국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 한 마지막 전시의 카탈로그에 썼던 글의 일부분이다.
삼년동안 오직 파란 색 외의 색을 쓸 수가 없었던 그때의 나는 매일 아침 바다로 나갔다.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 스타벅스 커피숍이 처음으로 개점했을 때였을 것이다. 아직 이른 아침에 첫번째 손님이 되어 그랑데 라떼를 시켜들고 이층으로 올라가 하염없이 무심한 바다를 몇 시간을 바라보았다. 나는 바다를 위하여 파란 색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바다는 이미 내가 그릴 파랑을 다 만들어 놓고 있었다. 시시각각 다른,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어왔던 수많은 색들..... 그 많은 푸른색을 표현하기엔 내 삶의 시간도 짧은 듯했다. 철저한 고립을 선택했던 그 시간 난 파란 색과 함께 비로소 나를 만났다. 파랑 그 색은 삶의 저편에서 나에게 손짓하고 있는 색인 듯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하는 끝과도 같은 색.
특히 울트라마린 불루는 먼 곳의 바다를 감싸고 있는 공기와 같이 나에게 밀려와 언제나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미국에 온 후 나는 그때의 울트라마린 불루를 만나기 위해 헤매곤 했다. 색채는 인간을 구원한다고 피카소는 말했다. 화가인 나는 색채에 빚을 진 사람이다. 특히 파란 색에... 누군가와 이별하게 될 때 어쩌면 처절한 마음으로 파란 색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별, 절망, 고독 속에서 파랑은 자기를 탐구하게하고 내적 성장과 치유를 일어나게 하며 새로운 나로 회복하게 했다. 그것이 파랑의 힘이다. 파랑에 완전히 젖어버리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재생의 힘이 생긴다.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일에 가슴을 찢어야 했던 순간에 파랑은 나의 구원자가 되었다.
마치 바다 속에 있는 듯 온통 파랑에 잠겨있던 그때 그린 파란 그림들을 가지고 미국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나는 지금 조그만 나의 뒷뜰에서 막 어두워지기 전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울트라마린 불루를 만난다.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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