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른 아침에 꽃밭에 나왔다, 며칠 동안 날씨가 무더웠던 탓에 좀 일찍 꽃에 물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틀 전에 옮겨 심은 다알리아 꽃에 물을 빨리 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봄에 심은 다알리아가 너무 크게 자라서 뒤쪽으로 옮겨 심어야 했다. 더운 날씨에 뿌리가 옮겨진 탓에 다알리아는 그 긴 목을 떨구고 거의 사경을 헤매는 듯하다.
지혜롭지 못한 엄마를 만나 저렇게 고생하는 다알리아를 보니 아침 내내 마음이 울적하다. 처음 이 곳에 꽃을 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네모형의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했다. 내가 원하는 꽃들을 색에 따라 이리저리 배치하며 심고는 아니다 하고 생각되면 다시 파서 옮겨 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캔버스라면 붓으로 그림을 지우지만 꽃밭은 꽃을 잘 파서 다른 곳으로 죽지 않게 옮겨 심어야 하기에 그림 그리는 일보다 힘든 노동을 요구했다. 하지만 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힘든 것도 잊은 채 개미가 부지런히 먹이를 옮기듯 열심히 했다. 꽃 키우길 너무 사랑하였다. 겨울 내내 봄을 기다리고, 밤에 잠들 때는 아침을 기다렸다. 어제 심은 꽃이 보고 싶어서.... 봄이 오면 꽃 심고 키울 생각에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했다. 누에고치 속에서 나비가 태어나듯 꽃봉오리 속에서 꽃이 기지개를 펴면서 봉오리의 껍질을 밀어내고 피어난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지도 못하며, 벌레가 먹으면 먹히는 대로, 목이 말라도 목마르다 말하지 않으며 묵묵히 운명을 견뎌가는 그 힘, 춥거나 비가 오면 잠시 고개 숙여 참은 후 그 가냘픈 줄기를 가다듬는 저 꽃들,,,,물감으론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살아있는 색들, 그리스인들이 그 속에서 발견해낸 황금비율의 조화!그러나 십 여년 이 지난 후 꽃밭은 더 이상 나의 캔버스가 아니다, 이젠 내가 조정할 수 없는 자유방임형의 꽃밭이 되었다,
해마다 다시 피어나는 꽃들은 저마다 자기자리를 주장하며 나의 미적 통치에 따라 주질 않는다. 또 꽃들은 점점 키가 커져 조그만 꽃밭을 더 답답하게 보이게 한다. 구석에 있는 꽃들은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줄기를 길게 길게 뻗어내며 꽃밭을 더 복잡하게 보이게 한다. 이젠 나의 꽃들은 자아를 가지고 자기 세상을 이루어 간다. 어느덧 다 자란 아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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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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