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적인 색채 연구소이자 색상회사인 팬톤(PANTONE)은 해마다 올해의 색을 발표한다. 2000년부터 시작된 올해의 색 발표는 현재 사회 전반적인 문화적 양상을 반영하며 그 다음해 건축, 인테리어, 패션, 제품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준다. 2017년 올해의 색은 그리너리(Greenery), 녹색이다. 이 색의 선정은 상당한 파격이자 당연한 결과였다. 에메랄드같이 화려하게 치장된 녹색이 아닌 풋풋하고 환경친화적이며 치유의 녹색. 빠르고 자극적인 변화에 익숙하고, 인터넷과 기계적인 환경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휴식처럼 다가온 너무나도 필요한 색깔이었다.
몇 년 전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서 우리 부부는 정원을 단출하게 바꾸었다. 크지 않은 마당 뒷켠 커다란 레몬 나무를 제외한 작은 나무나 다른 식물들을 모두 제거하여 정원을 가꾸지 않아도 되게끔 만든 것이다. 두 해가 지나자 나는 텅 빈 삭막한 마당에 무엇인가 심기로 했다. 무슨 나무를 심을까 고민하다가 나무는 포기하고, 그나마 키우기 쉬워 보이는 다육식물을 다양하게 가져다 무심히 심어봤다. 동네 기후상 다육식물이 잘 자라기 때문이기도 하고, 게으른 내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이틀만에 조그마한 다육식물 패치가 완성되었다. 두 살 난 딸 아이도 플라스틱 모종 삽을 들고 엄마를 따라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분주했다. 다육식물을 고른 또 다른 이유이다. 다육식물은 선인장과지만 가시가 없고 동글동글 귀여우므로 아이가 처음 식물을 가지고 돌보기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생활 공간에 파고든 초록의 힘은 대단하다. 조그마한 그리너리 패치가 완성되자 마치 마당 한쪽에 숨을 불어넣은 듯 집의 기운도 한껏 싱그러워졌다. 손바닥만한 정원에 조그맣게 몇 개 심어 놨는데, 아이도 나도 다육식물을 볼 때마다 행복하다. 애완동물이 없는 우리 가족이지만, 다육식물이 마치 애완동물같이 소중하다. 볼 때마다 잘 있었니 물어보고, 혹시 다른 변화가 있나 매일매일 관찰한다.
왜 사람들이 다육식물을 “다육이”라고 하여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느낌으로 줄여 부르는지 이해가 갔다. 투정부리던 아이에게 “우리 마당에 심은 다육이 보러 갈까?” 하면 순식간에 아이가 투정을 멈추고 차분해진다. 이것이 자연의 힘인가? 자연은 육아문제도 해결해 준다.
<
정고운(패션 디자이너)>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