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해야 할 일거리인 양 식탁 옆에 쌓아둔 못다 읽은 신문들을 읽는다. 필요한 페이지는 찢어서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허허한 날 옮겨 적으며 일기장도 채우고 빈 마음도 채운다. 짧은 시는 옮겨 적고 감동적인 내용은 사진을 찍어 친구들 카톡 창에 공유하기도 한다. 일기를 읽다 보면 살아온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노트 구석에 ‘버티는 게 이기는 것’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라며 큰 글씨로 다짐을 적어 놓은 걸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가슴이 짠해지기도 한다.
돌풍에 태풍이 몰아쳐도 맘속에 흐르는 잔잔한 바람이 중요하다며 마이웨이를 다짐했던 나날이 보인다. 일을 처음 했을 때 손님을 보면 반겨야 하건만 오히려 숨어 버렸던 자신에게 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바른길인 것처럼 스스로 다그쳤던 시간이었다.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해야만 살 수 있는 막다른 코너에 몰렸을 때, 절실함은 세상을 뚫고 나가는 용기를 주었고 서서히 직장에 적응하게 되었다.
겁쟁이가 미국 와서 겁을 상실하고 세상 무서울 게 없어져 버렸다. 비굴하게 세상에 끌려가는 자신을 보며 운명의 큰 수레바퀴가 날 끌고 간다 해도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내 삶의 굴레를 유지할 거라는 자만으로 때론 나를 곧추세우기도 했다.
늦은 밤 퇴근길 주차장에서 현관까지 걸어오면서 날마다 같은 길을 걸으며 낯선 길을 걷는 듯 두리번댄다. 그 길에 수줍게 핀 꽃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고, 풀숲에서 기어 나와 별빛에 샤워하는 달팽이에게 눈을 맞춘다. 스프링클러 물길 따라 아파트 현관까지 기어 나온 달팽이들은 밟히지 않게 풀숲으로 다시 옮겨주며 격려도 해준다. 가진 것도 힘도 없어 몸을 낮추고 살고 있지만, 때가 올 때까지 너도 품위 있게 살고 있으라고.
시키지도 않은 숙제를 덥석 받아들고 여성의 창 마지막 원고를 쓰고 있다. 이번 주는 무엇을 쓸까 글감을 생각하며 대하는 모든 것은 남다르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말 한마디도 다큐멘터리 프로도 소재가 된다.
쓰다 보니 일주일이 금방 지나고 또 마감일이다. 설익은 감정들을 날마다 추스르며 나의 고치 속으로 들어간다. 감정의 속살이 드러나 때론 부끄럽기도 했지만 내 삶에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생긴 거다. 읽어 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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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홍(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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