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언제까지 피아노를 치고 미술을 하고 영어를 배워야 하나요?”
이제 5살이 된 00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에게 인생 질문을 던졌다. 세상 다 산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다. 킨더가든 입학을 준비 중이던 이 학생은 치열한 세상살이의 맛을 이제 막 맛 보았다.
대체 ‘너를 위해서’ ‘너 잘되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듣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대학시절 심리학 수업 때 비슷한 주제로 들었던 강의가 생각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것의 결정은 자기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부모와 자식이든 부부든 친구든 모든 관계에서 시작과 끝은 ‘나’다.
누가 되었건 상대에게 희생하는 그 희생조차도 따지고 보면 ‘나’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기 싫다는 아이에게 억지로 시키는 그 심리 속에는 애가 잘 하게 돼서 내가 덕을 본다는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난 남들 못지않은 교육을 제공했고 최선을 다했다, 고로 난 괜찮은 부모다라는 자부심과 떳떳함이 생기는 자기만족 심리이다.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어느 정도 기본기는 알려줘야 한다는 교육관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서 기본기를 익히기도 전에 흥미를 완전히 잃고 세상에서 제일 싫은 과목이 되어 버리는 수가 있다.
더 나아가 ‘난 안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자존감 낮고 자신감 없는 아이를 만들기에 안성맞춤 교육이 된다. 나 또한 8살에 시작한 피아노가 그랬고,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무조건 외워야 하는 암기 과목이 그랬다. 요즘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꿈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없이 그저 하라는 것만 기계처럼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방식이다. 진학 과정에서도 세상에 맞춰 결정하고 부모의 뜻에 따라 미래를 결정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큰 책임감과 아이의 인생, 더 나아가서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는 일이다. 제발 처음 가보는 부모의 길이라서 뭘 몰랐다고 나중에 말하지 말고, 본인이 안되면 주위에 아이를 잘 이끌어줄 멘토가 되어줄 만한 인물이라도 찾아 주는 것이 돈으로만 아이를 키우려 드는 부모보단 낫다.
럼주가 들어있는 초콜릿을 아이가 집어들었다고 안타까워 그 손을 막지 말고, 아이 스스로 먹어보고 느껴보고 생각해보는 경험을 하도록 지켜보는 부모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선택 앞에 우리는 응원을 해주는 조력자일뿐이다. 당신은 울고 있는 00에게 무어라 대답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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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세종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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