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시인 아플리네르(Guillaume Apolliaire)의 여인으로 알려진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은 감각적이고 화사한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관능미의 여인들을 주로 그렸지만 그림보다는 시 ‘잊혀진 여자’로 더 알려져 있다.
그녀는 할 일 없이 따분한 여자보다 불쌍한 여자는 외로운 여자이고, 외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림받은 여자이고, 더 불쌍한 여자는 의지할 곳 없는 여자이며,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이고, 더욱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라고 했다.
그러나 아플리네르는 그녀를 잊지 못해 미라보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은 흘러가 버렸다고 사랑의 허무함을 노래해 우리에게 긴 세월동안 애독되고 있다.
사랑의 아름다움도 이별의 아픔도 그 시대를 풍미했던 연인들도 강물처럼 모두 흘러가 버렸지만 인간에게 사랑이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세느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글이 두 번 나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지인들이 염려의 전화를 주셨고 안부를 전해 왔다. 우선 감사와 염려끼침에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다.
기침을 억지로 유발해 검사도 3일 했고 아직까지 소견으론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침범의 일시적인 반응으로 보고 3개월 후 CT를 다시 찍기로 했다. 그 와중에 ‘잊혀진 여자’ 시가 생각이 났고 아직은 잊혀진 여자가 아니라는 농담도 하는 여유를 가졌다.
넘쳐나는 의학상식을 접하면서 지나친 자가진단으로 앞서 나가고 있지는 않는지. 그중 하나가 나 자신이었고 나뿐이 아닌 우리들은 모든 걸 앞서 판단하고 앞서 행동하면서 일을 그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나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어느 한 사람의 단면만을 보고 편견과 오해로 그 사람을 잘못 판단하는 누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비슷한 일로 난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미리 하고, 마치 내일 어찌 될 것처럼 구시렁거리며 바보가 되려나.
나이 40이면 불혹이라 했는데 그 나이가 지나고도 한참을 달려왔는데 모든 일에 초연해지기는커녕 제일 가깝다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핑계로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라는 나옹선사 말씀처럼 탐욕도 성냄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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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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