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은 전라남도 나주 과일 배가 유명한 곳이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이미지 중 하나는 할아버지가 자전거 뒷다리에 매달고 오신 커다란 나주 배이다. 할아버지는 그 커다란 배를 수저로 긁어서 내 입에 한 숟가락씩 떠넣어 주셨다. 할아버지의 크고 거친 손, 둥근 황토색 배, 그리고 차가운 은색 쇠 수저는 몇 안 되는 어렸을 적의 또렷한 메모리로 남아있다.
할아버지는 무섭기도 때론 안쓰럽기도 또 눈물도 많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할아버지 댁에서 친척 동생들과 신나게 얼음 땡을 하다가 눈이 녹은 앞마당을 발자국 잔치로 만들어 할아버지한테 불호령이 떨어진 이후 한동안 그가 무서웠다. 할아버지는 항상 할머니 눈치를 보며 큰사위인 아빠를 핑계 삼아 막걸리를 빠르게 들이키실 때면 또 그가 너무 짠해 보였다.
나주를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허리에 뒷짐을 진 채 마을 어귀에 나와 자식 손자들을 기다리셨고 우리가 다시 서울로 올라올 때마다 눈물을 훔치셨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매번 우리를 반겨주셨고 또 떠날 땐 그렇게 서운해 하셨다.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게 될 거라고 알지 못했던 그날, 나는 미국 스타일로 인사하자고 하며 할아버지를 꼭 안아드렸다. 할아버지는 무척 쑥스러워하시며 크게 웃으셨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와 눈물 없이 그렇게 작별했다.
할아버지는 항상 나를 다른 손자들이 없는 구석으로 데려가 주머니 쌈짓돈을 쥐여주시며 "착하게 살아라 잉"라고 당부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착하게 살고 싶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착하게 산다는 것이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당부는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내 언행을 한 번씩 뒤돌아보며 반성하게 만든다. 이제는 나주에 가도 우리를 마중 나와 있는 뒷짐 진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소소한 가족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여전히 우리 삶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할아버지 보고싶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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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BAKI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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