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빠르게 변한다. 한때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했던 것들이 현재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디지털 시대를 ‘낭만이 사라진 시대’라고 부른다.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에 대표였던 존 스튜어트 밀, 감정은 경시하고 이성을 만능으로 보는 공리주의에 의문을 품어 사상가로 전환하면서 남긴 말 중에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라고 정신적인 쾌락을 강조했다.
무엇을 경험하든 요즘 우리는 너무 사색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 솔직히 먹고 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인생 계획조차 앞뒤 생각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런 이들에게 갑자기 물어봐 답을 쥐어짜 만들어 봤자 돈 많이 버는 거 정도?이런 현상은 잘살고 못살고 금수저인지 흙수저인지, 배움의 정도와는 아이러니하게도 상관이 없다. 얼마나 깊이 현상에 대해 의미를 담아 생각하고 고뇌하느냐의 문제이다.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은 정신적인 쾌락보다는 육체적인 쾌락에 더 가까운 삶을 산다. 깊은 고뇌보다는 오늘 내일 먹을 빵과 음식을 고르는 행위에 더 에너지를 쏟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색은커녕 낭만조차도 사라지고 무의미한 레토르트 러브가 유행처럼 번진다. 썩 반갑지 않은 유행이다.
쉽게 맺고 끊을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공허한가. 문명은 고도로 발전을 했을진 몰라도 인간 삶 자체는 원시시대에 기본욕구만을 채우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느껴진다. 멋진 의복을 갖추고 현란하고 복잡한 디지털 기기들을 쓰면 무엇하나 스스로의 삶조차 선택하질 못해 타인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그립다. 꾹꾹 눌러쓴 구구절절한 내용이 담긴 손편지가 그렇고, e-book 기기를 들고 읽는 모습보다 종이냄새 나는 책을 읽는 모습이 그렇다. 약속을 잡고 집을 나선 후에는 연락 닿을 방법이 없어 꼼짝없이 약속 장소에서 기다려야 하는 그때의 불편함. 분명히 불편함이 많은 시대였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더 없을 낭만이 있었다. 가벼워진 관계와 사라진 낭만. 그것들을 안고 살다보면 불편함과 아날로그를 낭만의 미덕으로 삼는 세대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나의 이상형은 떨어지는 가을 낙옆을 보며 시 한소절 읊조릴 수 있는 감성과 낭만을 아는, 카페에 앉아 SNS하느라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인증샷 찍는 대신, 책을 읽고 있는‘사람냄새’풍기는 사람이다.
당신은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
박소영(세종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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