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협박당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유령의 도시’(City of Ghosts)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슬람국가(IS)가 점령한 시리아의 도시 라카에서 벌어진 참상을 알리기 위해 IS를 반대하는 용감한 시민들이 만든 지하 미디어 ‘라카는 조용히 학살당하고 있다’(RBSS·Raqqa Is Being Slaughtered Silently)가 다큐의 주인공이다.
RBSS 시민기자들은 쫓기고 추방당하고 죽음을 무릅쓰면서 그들의 고향을 점령한 IS에 대항한다. 그들의 무기는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으로 라카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촬영하고 소셜 미디어(SNS)에 올린다. IS의 살해위협을 받고 각국을 떠돌며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은 무기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유령의 도시’는 2010년 12월부터 아랍권 국가들에서 이어졌던 민주화운동 ‘아랍의 봄’을 언급한다. 튀니지에서 이집트를 거쳐 서남아시아로 넘어가며 2011년 시리아에도 혁명의 물결이 닿았다. 40년 간 2대에 걸쳐 시리아를 지배하는 알 아사드 독재정권에 항거하지만 주변 독재국가들이 ‘아랍의 봄’을 거치며 정권이 붕괴되는 모습을 지켜봤던 알 아사드 정권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한다. 이 혼란기를 틈타 IS가 라카를 점령하고 맹렬히 위세를 떨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라카에서 벌어지는 만행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목숨을 위협받는 해외 언론들이 시리아를 탈출했고 SNS 역시 철저하게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라는 감시 세력이 사라지자 IS는 라카를 근거지로 공개처형, 민중억압은 물론이고 도시의 위성통신망을 부수고 어린아이를 선동해 테러를 자행하며 바깥 세상과 단절시킨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유령의 도시’가 돼버린 것이다.
지난 7월 LA 월드어페어카운슬이 주최한 ‘유령의 도시’ 상영회에는 독일로 탈출해 고향에 있는 친지들과 스마트폰으로 겨우겨우 연락을 주고 받으며 RBSS 활동을 하는 주인공이 참석했다. 독일 경찰이 신변보호를 제의해도 거절하고 자신만 믿고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이다. 라카의 참혹상을 알리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독일과 미국을 40회 넘게 드나들었다. 이민국 2차 심사대를 거치는 단계쯤은 당연하다 여길 만큼 고난의 미국행이지만 ‘학살당하는 라카’를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잔류 중인 16만 명의 라카 시민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한번이라도 고향땅을 밟아보고 싶다는 그의 집념이 RBSS를 존재시키고 있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바꿔놓았다. 그럴리 없다 단언하지만 한반도 위기설은 눈덩이처럼 커져간다. 북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답답한 현실도 한 몫 한다. 스마트폰은 있어도 인터넷이 안된다는 북한, 평양의 봄을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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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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