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동안 미술업계에서 유명한 교수님을 둔 덕분에 많은 전시에 조수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중 아직도 기억하는 한 전시는 대학로의 아르코 미술관에서 진행한 “’where are you? (당신은 어디 계신가요?)”라는 전시이다.
전시장 내부의 불을 끈 100% 암흑상태에서 진행되는 전시로써 미술작품을 시각을 제한한 채 다른 감각으로 느껴야 하는 획기적인 전시였다. 게다가 시각장애인들이 도슨트(Docent)로 참여하여 일반 관객들을 어두운 전시장 내에서 안내하는 일반전시와는 다른 접근방식이었다.
이 전시에 참여한 한 시각장애인인 영준 씨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으로 어린 시절 시력을 잃었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안내자로 참여하는 전시를 신기해했었다.
어느날 영준 씨의 부모님이 오셔서 영준 씨와 함께 나는 안내를 위해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으로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수많은 백열등이 켜져서 눈앞이 하얗게 안 보이는 작품 안에 들어갔을 때 나는 숨죽여 오열하고 있는 영준 씨의 어머님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전시장에서 나와 어머님께 괜찮으시냐며 여쭤보니 본인은 처음으로 경험한 암흑을 본인의 아들은 평생 그러한 어둠 속에 살 것으로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전시를 통해 영준 씨의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어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한 주말 오후 5살 정도의 어린아이 두 명과 어머니 두 분이 전시장에 들어오셨다.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 수업이 끝난 후 들린 눈치였다. 전시장 안에 들어갈 때 두 아이는 줄로 묶은 풍선을 손에 쥐고 들어갔었다.
익숙하지 않은 어두움이 어린아이들에게 두렵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는 달리 아이들은 전시장에 잘 적응해 나갔다. 전시장의 중반을 지나가는 중 아이들은 차례대로 풍선을 허공으로 놓치고 말았다.
아이들이 울 거라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풍선은 깊고 넓은 우주를 여행 간 거라고 본인들은 괜찮다며 안녕 잘 가라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공감각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두 눈으로 무언가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온전히 다 바라본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시각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타인의 입장에서 대면해야 하는 세상과 사물을 대하는 또 다른 관점을 만날 수 있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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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BAKI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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