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슬’이 내리는 ‘백로’가 되면 제비들은 돌아가고 기러기가 온다. 새들은 먹이를 저장하고 들판의 벼이삭이 여물어가는 가을이 서서히 오고 있는 중이다. 시간은 가을의 문턱에 막 발을 들여 놓았는데 도시는 며칠째 블랙홀 같은 여름 폭염에 갇혀서 아우성이다.
저녁이 되어 차 한 잔을 들고 마당 평상에 앉아 있으려니 선선한 바람이 한낮의 무더위를 가져가 여유로움으로 상념에 잠겼다. 온전히 누워야만 더 잘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이 잊고 지냈던 시 한 편을 헤집어 꺼내 놓는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나도 그대에게/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내가 가진 게 없다 할지라도/그대여/가을 저녁 한 때/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안도현의 가을 엽서 -쌓인 낙엽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 푹신함을 만들어 주는 낙엽에서 겸손함을 보는 ‘詩心’ 이 시인의 넉넉함이 봉숭아 꽃물처럼 마음을 물들인다. 그 넉넉함을 조금 덜어 내어 오늘 하루 조급하게 보낸 우리 일상에 보태 주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날이 될까? 그래. 올해 남은 시간들도 겸손함과 넉넉함을 잊지 말고 살아가도록 기도해 보자.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가을이 되면 일조량 감소로 인해 ‘세로토닌 활성소’가 낮아지기에 우울함을 더 잘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를 심리학자들은 ‘정서 지향적’인 여성에 비해 ‘성취 지향성’이 강한 남성의 심리적 성향 때문이라고도 한다. 정해 놓은 목표치에 대한 상대적으로 적은 성취감이 허무함과 공허감을 주어 더 외로워진다는 것이다.
최근에 UCSD 약학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계절적 상황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보다 외로움을 더 잘 느끼는 ‘우울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개개인의 행복에 차이를 주는 ‘행복 유전자’는 발견됐다. 하지만 나는 이런 유전자들이 사람들의 행복과 우울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형형색색 아름다웠던 단풍이 생을 마감하여 낙엽으로 뒹구는 것을 보면 센티멘탈(sentimental)에 빠지게 되니까.
올 가을 유난히 외롭고 쓸쓸하면 어떠랴. 그냥 가을이 주는 정서에 젖어보는 것도 계절이 주는 소소한 행복의 발견이지 않을까? 오늘 가을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 별 것’인 촌부에게 시 한 편에 담겨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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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숙(요셉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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