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전화로 한국의 추석 연휴가 시작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포털 웹사이트에는 인천공항의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진과 명절 스트레스에 대한 며느리들의 사연만이 명절을 알리는 듯해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명절은 기름 냄새와 오랜만에 다같이 만나는 반가운 친척들의 얼굴과 대화인데 한국을 떠난 뒤로는 예전처럼 명절을 보낸 적이 없었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면 엄마와 함께 근처에 사시는 큰아버지 댁에 갔다. 엄마는 큰엄마를 도와 친척 언니들과 함께 온종일 명절 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아 막 만든 전을 하나씩 몰래 집어먹었다. 물론 명절준비는 하루만에 준비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큰엄마는 이미 시장을 여러 번 다녀오셔서인지 생선이며 과일, 각종 채소 등 차례상에 필요한 제수품이 베란다에 가득했고 식혜 등은 이미 만들어 놓으신 상태였다.
우리 집안도 여자들이 주로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식기를 정리하는 전형적인 한국가정이었다. 물론 큰아버지는 밤을 까거나 준비하지 못한 제수를 사러 시장에 다녀오시기도 했다. 하지만 몇 시간씩 앉아서 전을 부치거나 계속해서 나오는 설거지를 서서 하는 일은 대부분 여자가 했었다.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전을 부치던 모습은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희한하게도 명절 때 먹은 전이 생각나 평상시에 시도해도 예전에 명절에 부쳐 먹었던 그 맛은 나지 않는다.
명절 당일이 되면 차례상에 조상께 절을 하고 또 웃어른들께 절을 하며 인사를 했다. 차례상을 물린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고 가족들이 편을 나눠 윷놀이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점심 무렵, 큰집에서 나와 외삼촌 집에 가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들, 이모부들, 사촌 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외가 식구들이 모이면 근교에 바람을 쐬러 다같이 나가 밤을 따거나 단풍잎으로 예쁘게 물든 가을 산을 즐겼던 거 같다.
내가 기억하는 명절은 온 가족이 모여 맛있게 먹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보냈던 거 같은데 요즘 미디어에 나오는 명절은 스트레스와 희생으로만 치부된 그 누구도 즐겁지 않은 것으로 표현하는 게 안타깝다. 어릴 적 보았던 고속도로의 긴 줄 대신 인천공항의 긴 줄은 명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주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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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BAKI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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