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토론토 영화제에서 본 중국영화 ‘방화’(Youth)는 146분이란 러닝타임만큼이나 긴 여운으로 남았다. ‘꽃답고 환하게 빛나다’라는 의미를 담은 영화 제목 그대로 ‘방화’는 1970년대 중국 인민해방군 문예공작단 소속 젊은 가무단원들의 청춘을 담았다.
펑 쟈오강 감독이 중월전쟁(Sino-Vietnamese War)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헌사된 작품이라고 밝혔듯이 영화 후반부를 장식하는 전쟁의 잔혹성이 ‘디어 헌터’를 떠올리게 한다. 펑 감독은 젊은이들이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평화의 소중함을 배우며 부모를 이해하길 원하는 의도를 담아 중국 청소년들에게 부모와 함께 영화를 보라며 티켓 1만장을 나눠줬다고 한다.
토론토에서 첫 선을 보인 이 영화는 중국 국경절(10월1일) 연휴 흥행작으로 꼽혔지만, 시진핑 집권 2기인 19차 당대회를 앞둔 중국 당국의 민감함이 반영돼 최근 화해 기류가 흐르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간 관계를 고려, 개봉이 연기됐다.
올 들어 중국이 쏟아내는 애국주의 영화, 소위 한국에서 ‘국뽕’이라 불릴 대작들에 밀렸다고 했지만 당국이 신문, 방송, 영화, 소셜 미디어 등에 대한 언론·사상 통제를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월전쟁은 국경분쟁과 베트남 거주 화교 추방 문제를 둘러싸고 1979년 2월 중국군이 베트남을 전면 침공한 뒤 베트남군의 반격에 고전하다가 징벌 목적을 달성했다는 명분으로 한달도 안돼 철군했던 군사충돌이다. 당시 중국군은 많은 사상자를 내는 등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 했는데 영화 속에서도 꽃다운 나이의 반짝반짝 빛이 나는 젊은이들이 잔혹한 전쟁으로 청춘을 국가에 바친다.
이념과 체제를 막론하고 집권 정부에 어필하려는 애국주의 영화는 어디서건 존재하고 체제 유지의 도구로 이용된다.
최근 중국에서 흥행 몰이 중인 애국주의 영화는 중국판 람보에 비견되며 중국의 목소리를 냈다는 영화 ‘전랑2’(Wolf Warriors 2), 중군인민해방군 창설을 다룬 ‘건군대업’(The Founding of an Army) 그리고 중국인민해방군이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는 중국판 탑건 ‘공천엽’(Sky Hunter)으로 이어진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19차 당대회로 새로운 5년을 설계하려는 당국이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시진핑 주석에 대한 충성으로 연결하려는 의도도 보고 있지만 요즘 세대 어느 젊은이가 애국주의 발현을 강요받아 나의 청춘을 너에게 바칠까 싶다.
관객은 감동을 주는 영화 앞에 솔직하다. 보이지 않는 어떤 영화적 힘이 관객을 끌어들인다. 영화 자체가 주는 가슴 속 깊은 울림이 있다면 그 영화는 청춘을 움직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도 국뽕이 아니고 애국주의도 아닌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낸 대작이라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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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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