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소련이 모피 생산량 늘리기 위해
▶ 동아시아 동물 유럽까지 옮겨 놓아

2008년 11월 발견된 너구리의 모습. 귀가 작고 다리가 짧은 전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2011년 5월 구조된 어린 너구리의 모습. 눈도 뜨지 못한 새끼 너구리는 수리부엉이의 사냥감이 되기도 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너구리의 학명(Nyctereutes procyonoides)에서 ‘Nukt-’는 밤을 뜻하고 ‘ereutes’는 방랑자를 뜻합니다. 밤에 돌아다니는 방랑자인 셈이죠. 종명의 ‘pro’는 ‘작은’을 뜻하며 ‘cyon’은 개를 지칭하는 말이니 결국 너구리의 학명은 ‘밤에 돌아다니는 작은 개’라는 의미가 됩니다.
개과에 속한 너구리는 하나의 속에 한 종밖에 없는 독특한 동물입니다. 너구리속은 약 900만년 전에 출현했지만 대부분 340만년 전부터 78만년 전 사이에 멸종하고 지금은 너구리만 남았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너구리의 유전자를 분석해보니 많은 여우속 동물의 공통 조상 격이더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남미 산 여우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너구리의 두개골은 작지만 단단하고 약간 정방형입니다.
육식 동물에서 발견되는 송곳니와 큰 어금니(열육치)는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어금니는 평편하고 다른 개과 동물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긴 소화기관이 발달해 있습니다.
몸통은 긴 편인데 다리는 짧아 잘 뛰지 못합니다. 총 길이는 45~71㎝ 정도이며, 몸체의 3분의 1에 못 미치는 12~18㎝ 정도인 꼬리는 뒷발의 발목관절 정도까지 내려오며 땅에 끌지는 못합니다.
귀는 짧고 털에서 살짝 돌출된 정도이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체중은 계절에 따라 변화가 심한데 3월에는 3㎏ 정도였는데 8~9월에는 수컷의 경우 6.5~7㎏에 이르기도 합니다.
너구리는 곤충부터, 설치류, 식충류, 양서파충류와 조류, 어류, 갑각류와 사체 등까지 먹는 잡식성이지요. 기회가 닥치는 대로 아무 것이나 잘 먹는다는 뜻에서 ‘기회적 일반섭식종’이라고도 합니다. 계절적으로 출현하는 먹이에 따라 주 먹이는 계속 바뀔 수 있어 환경적응력이 좋은 종인 셈이죠.
민가 주변의 너구리 똥을 살펴보면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가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고춧가루나 조기 머리뼈, 구운 오징어, 심지어 소화가 안된 비닐장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을에는 은행을 먹기도 하는데 은행의 과육은 먹고 은행알은 그대로 배설한 배설물 덩어리들도 발견됩니다. 거미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위 안에 거미만 가득 찬 개체도 확인된 바 있죠. 일단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어두는 습성이라 위 안에 동일 먹이물질이 한 가득 들어있는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너구리는 배설할 때 공동화장실(분장)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너구리들과 소통을 하기도 하는데요. 연구에 따르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목적은 각 가족 구성원이나 외부침입자를 가리는 방식이라고 하네요. 주로 후각 정보를 통해 같은 종 내부에서 서로를 인식하는 방법이랍니다.
여우처럼 짖지는 않습니다. 대신 끙끙대는 신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지요. 다양한 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매우 특징적인 소리는 없습니다. 다만 공격하거나 방어를 할 때는 매우 날카로운 “꺅-“하는 괴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으르렁대기도 하지만 심하게 소리가 크지는 않습니다.
너구리는 다양한 자세를 통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꼬리를 움직여 우월성을 표현하거나 발정 준비를 나타내죠. 직접적인 접촉은 주로 부모 자식간, 부부간에서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 됩니다.
너구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병은 아마도 개선충증, 개홍역과 광견병이 아닐까 합니다. 개선충증은 굴 생활을 하는 너구리에게 전면적으로 퍼질 가능성이 높고 건강한 너구리도 감염이 될 수 있습니다. 털이 심하게 빠지거나 심한 가려움증, 표피박리, 만성 피부염 등을 유발하고 체중 감소도 일으킵니다. 피부 병변이 심해 ‘너구리 에이즈’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감염된 동물과 접촉할 경우 사람에게도 감염되지만 증식하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없어집니다. 하지만 감염이 되면 한동안 가려움으로 고생을 좀 할 겁니다. 특히 겨울철에 두드러지는데 일본의 너구리 폐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겨울은 너구리가 살아남기 가장 힘든 계절인 만큼 몸의 면역능력이 떨어져 더욱 잘 발생할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홍역은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일반적으로 종합예방접종에 포함된 질병인데, 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초기 3~6일간은 체온이 올라가고 이 시기에는 눈곱과 콧물이 많이 나오며 다소 침울해지고 식욕을 잃게 됩니다. 소화기, 호흡기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기침과 콧물을 시작으로 기관지염이 발생하고 폐렴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까지는 야생너구리에게서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에 접촉을 조심해야 합니다.
광견병은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개나 다른 가축, 심지어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요. 해외에서는 해당 지역의 너구리를 대량 살처분 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피를 얻기 위해 너구리 사육량을 늘려 왔습니다. 너구리가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퍼져나간 이유도 구 소련이 모피생산량 증대를 위해 동아시아 동물인 너구리를 강제로 동유럽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죠. 유럽으로 이주한 너구리는 적응력과 식성, 번식능력 때문에 급격히 퍼져 나갔고 광견병과 같은 질병의 주요 숙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모피는 현대 사회에서 동물권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많은 동물 보호단체가 모피문제를 지적한 바 있죠.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겨울 최고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라쿤털도 사실은 너구리털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의 옷장에 걸린 두꺼운 외투, 그 모자에 달린 털에도 너구리는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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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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