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초 우거진 냇물가/아버지 그물 하늘 보고있다. /빗방울 스물스물 내려오면 /바케츠 내게 들리우고 앞서가던 아버지 /은빛 비늘 파닥이는 붕어 피래미 꺽지 쏘가리 /아버지사랑 그물코에서 반짝이고 /마당 한구석에선 풋배추 깻잎 파 어울어진 /엄마사랑이 끓어 넘치었지. /냇가 멀리서도 /물고기 많고 적음 다 아시는 아버지. /찢어진 그물코 꿰매시며 /우리 4남매에 흐뭇하시던 당신 //두고 온 이북고향 그리워 /눈시울 적시며 부르시던 고향노래. /그 설움 어찌하고 타향땅 한 줌 재 되시었나. /아버지 /이번 추석에는 /엄마손 잡고 고향땅 가소서.
추석이면 더욱더 그리워지는 부모님
강원도 금강산 밑이 고향인 아버지는 남한에 아무 일가친척도 없는 가운데 비로소 나를 첫딸로 피붙이를 가지셨다. 엄마도 외동딸이셨고, 외로운 두분에게 남다른 사랑을 받아서일까, 나 또한 부모님 그리움이 남달리 큰 거 같다. 외로운 두 분이어서인지 유달리 금슬이 좋으셨던 부부이셨고 같은 날 같은 시에 함께 세상 뜨시길 원하셨지만 생명이란 게 어찌 사람 마음대로이던가.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슬픔에 잠겨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셨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삶에 대한 애착도 없으셨고 하루하루를 무덤덤하게 보내시었다. 아버지는 엄마 돌아가신 후 93세가 넘어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 가셔서, 하루 소일을 하고, 여느 직장인처럼 5시경 퇴근해 오셨다. 며느리에게 점심상도 피하게 하실 뿐더러 부담주지 않으시려는 배려셨다.
90 평생 병원 출입도 거의 없으셨고 크게 앓아 누우신 적도 없던 아버지는 몸이 안 좋다고 병원에 걸어 들어가셨다가 그 길로 입원해 10일 만에 돌아가셨다. 본인이 나아서 집으로 갈 수 없다는 걸 눈치채시고 잡수시는 걸 거부하신 채 돌아가신 거다. 아버지는 본인의 명을 아셨는지 시계만 자꾸 보시길래 손목시계를 풀어 감추었다. 몇시냐고 계속 물으셔 왜 그렇게 시간을 물으시냐고 했더니 어차피 가야 될 길인데 시간이 빨리 가야 빨리 간다며 재촉하시고 입에 넣어드린 음식도 뱉어내셨다. 자식들에게 폐를 안 끼치려고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존경하는 아버지, 자애로우신 엄마, 뼛속까지 그리운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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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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