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란 단어는 여러 가지 감정을 만나게 한다. 누구에게나 아련한 설렘으로 기억되는 청춘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어떤 일을 끝냈을 때 마무리를 잘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잘 해냈다는 만족감 같은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끼게도 한다. 영화 ‘러브스토리’ 주인공의 “사랑이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라는 대사를 그 시절의 나는 사랑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종류의 마지막을 만났던가. 3년을 함께 보내던 친구와 졸업식 이별, 이름만으로도 찬란하게 빛나던 청춘과의 이별, 가족과의 김포 공항에서 눈물 이별,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승 이별, 오늘 마지막으로 쓰는 ‘여성의 창’과의 이별… 지나간 모든 이별의 마지막 자리엔 슬픔이 머물렀지만 그리워지는 마지막이다.
우리는 끝이 좋다면 과정이 어찌되었던 간에 모든 것이 좋게 치부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과정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파묻힐 때 사람은 마지막엔 두 가지 형태로 대응한다. 스트레스에 집착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반대로 인정하지 않고 날려 보낸다. 전자도 후자도 문제가 있지만 결국엔 자신의 마지막 감정선 각도를 어디쯤 두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마지막도 달라진다.
‘감정적 민첩성’이란 고난이나 다양한 경험이 주는 상황에서도 자기 가치에 어긋나지 않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 ‘베어먼’은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죽는다고 믿는 ‘존시’를 위해 폭풍우 속에서도 담쟁이 넝쿨잎 한 장을 그려 놓았다. 그려 놓은 잎사귀는 ‘존시’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의 시작이 되었다. 정작 자신의 죽음을 예상치 못한 베어먼의 이웃에 대한 감동적인 결정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모든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나로 하여금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해 새로운 출발로 이끄는지 생각해 본다. 사랑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는 세상의 모든 가치 구현은 실현되지 못할 것 같다. 마지막의 끝자락에서도 사랑만 있으면 다시 출발할 수 있으니까.
지금 창밖엔 산불 때문에 무척이나 그리웠던 비가 오신다. 모든 자산과 가족을 처참하게 앗아갔기에 자연 앞에 무력한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 비가 계속 내려 산불을 잠재워 주기를. 두 달여 남은 2017년의 마지막까지만이라도 나는 그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사랑비’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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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숙(요셉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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