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다시 찾은 고국은 늘 그랬듯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같은 언어와 모습으로 소통할 수 있고 낯익은 시절이 마음에 포근히 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에 3주 남짓 되는 짧은 기간에 많은 친구를 만나며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의 의미를 각인시키는 서로의 만남이었다.
내가 머문 숙소 부근에 마치 하늘에 가까이 있는 듯한 ‘하늘공원’으로 가는 271개의 계단을 오르며 펼쳐진 가을의 청취는 짙은 추억으로 물 들어 있다. 가을과 어우러진 코스모스, 해바라기, 상쾌한 아침 바람에 한들거리는 억새의 향연이 감미롭고 평화스럽다. 간간이 세워진 정자에 오르니 무릉도원에 온 듯하며 저 멀리 보이는 한강과 남산 타워를 바라보는 마음은 ‘서울의 찬가’를 부를 만큼 황홀했다.
친구와 내가 자란 도심 속의 보잘것없었던 하천인 청계천은 세계인이 주목받는 관광의 명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잘 어우러진 수초와 잉어 떼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가을 햇볕에 따스함을 더해준다. 불안한 한반도 정세와 함께 우리가 여기서 염려하는 한국민의 불안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평화롭고 바쁜 일상의 모습뿐 이었다.
틈을 내어 3박 4일간의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40여 년 전 이곳에 올 때까지 서울의 사대문 안에서만 생활하던 나에게는 원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양구’ 민통선 내에 있는 ‘두타연’을 들러보는 특별한 일정이었다. 50년 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2004년에 풀린 관광명소이며 붉게 물든 단풍이 가을의 정서를 흠뻑 물들인다.
DMZ 북방 경계선 바로 밑, 험한 산악지역인 이곳은 다섯 개의 능선을 따라 여러 차례 내어주고, 탈환하던 격전지라 한다. 격렬했던 전쟁의 안내판을 보면서 나 또한 6.25전쟁으로 세 돌이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었던 슬픔에 다시는 이 땅에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양구라면 최고의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을 수가 있는 박수근 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다. 전시된 박수근의 첫사랑이자 배필로 맞이한 빛바랜 청혼의 편지를 읽으며 천재 화가의 애틋한 사랑을 느꼈다. 한국을 빛낼 수 있는 천재 화가의 젊은 나이의 요절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충북 제천에서 시작한 자동차 여행을 끝내고 서울에 돌아와 보니 어느 새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며칠 남아 있지 않다.
엊그제만 같았던 환영해 준 친구들과 벌써 작별의 정을 나누려 점심에 만나서 청계천을 따라 두, 세 시간 걸었다. 피곤했지만, 헤어지기에는 이른 나이(?)인지라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다 식사 후 밤늦게 헤어졌다. 동창생이란 이렇게 그저 옆에만 있어도 푸근한 감정을 갖기에 좋은가보다.
그 후 사흘 동안 집 앞에 있는 마트를 몇 번 가게 되었다. 갈 때마다 젊은이의 두 손 모은 공손한 인사를 받으며 입장하는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혹시 그것이 한국사회에 만연한 갑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만약 어린이가 엄마 손 잡고 마트에 갈 적마다 그 모습을 보고 성장한다면 그로 인해 ‘갑과 을’의 관계가 어려서부터 마음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손님은 왕’이라는 차원을 넘어 고쳐야만 하는 관습이 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짧게만 느껴졌던 고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하늘 위에서 그동안 도움을 준 방성민 후배와 여러 동창, 그리고 마주했던 분들에게도 와인 한 잔을 들면서 무조건 건강을 위하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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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무심 / 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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