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내미가 엘에이로 대학을 간다고 할 때였으니까 꽤 오래전 일이다. 우연히 Parade 잡지에서 읽었다. 어느 식당에 관해서였는데 위치는 헐리우드. 주소도 없고 간판도 없단다. Rodeo Dr. 에 있는 어느 보석상건물 뒷골목으로 들어가서 조금가다 오른쪽 허술한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는 그런 아리송한 길안내가 있었던 거로 기억된다. 단골들만 가는 식당이니까 그런 게 사실 필요없는건가보다.
허나 그게 포인트가 아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놀라운 것은 이 식당에 가려면 은퇴연금을 부수던가 아니면 한 뭉치 주식을 팔던가, 단단히 각오하고 가라는 귀띔이었다. 월급봉투를 통째로 헌금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식당에 가는데 은퇴연금을 부술 준비를 하라는 얘기는 사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기에 때문이다. 얼마나 비싸기에...
기숙사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던 딸내미와 눈이 마주친다. ‘우리 학교 등록하러 갈 때 그 식당 한번 가볼까?’ ‘.......’ 어이가 없다는 듯 공주님이 말없이 처다만 본다. 단일전도 알뜰하게 쓰는 공주님한테 농담으로도 통하지 않는 헛소리다. ‘그래, 이번에는 그만두고 졸업할 때 그때다! 깡이다, ...한턱낸다.’ 겸연쩍은 혼잣말이다.
4년 반 후 ---
딸내미 아파트에서 짐을 싸서 엘에이를 떠나면서도 그 굉장하다는 식당을 그냥 지나고 만다는 게 영 아쉽다. 은퇴연금도 없고 팔 주식도 없어서가 아니다. 딸내미 졸업을 핑계로 한번 분에 넘치는 호강을 해보고 싶었지만 민주적 투표결과 3대1로 깨끗이 승복하고 만 것이다.
그로부터 한참한참 후 ---
그 식당이, 은퇴연금을 부숴야 된다는 그 유명하고 비싼 식당이, 우리 동네에도 문을 열었단다. 뉴욕, 런던, 빠리, 그리고 동경등 전 세계 30여개 식당에서 명성을 날리는 그일본식당이 여기 팔로알토에서도 문을 열었단다.
--- 얼마 전부터인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 동네 식당들 감시에 등한시 하는 동안 팔로 알토에 Nobu 호텔과 함께 Epiphany 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알게 된 거는 호된 신고식을 해야만 되는 이식당의 기사가 이번 주 SF 클로니클에 올라오면서다.
이렇게 구석구석 하나하나에 이토록 혹독한 부정적 식당평가 기사를 읽어본 적이 없다. 단한개의 긍정적인 언급이 없은채로 그대로 백퍼센트 완패다. 끝으로 한마디 코멘트가 실렸다. 30년 전 음식에 현대 가격을 붙였다고,
기억하나 떠오른다. 오래오래전 메뚜기 촌에서 잘나가던 한식 식당에 손님이 뚝 --- 한숨만 푹푹 쉬는 주인한테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화장실을 둘러보면서 깊이 생각해보라고...
이미 작고하신 선배 한분이 계셨다. 다방면에 박식하신 이분과 식당엘 같이 가면 꼭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식당을 제대로 하려면 식당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 100명보다 지금 이 순간 이 식당 안에서 식사하고 있는 고객 한분이 더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한다고……. 한마디로 요약하면 ‘서비스...?’
--- 그유명한 그 일본식당이 우연히 그렇게 유명해진 건 절대 아닐 거다. 그리고 그런걸 모를 리가 없을거다. 그런데 왜 이런 혹독한 신고식을 해야만 될까? 성공한 자기도취 속에서 고삐가 풀렸던가 어쩌면 문어발에 한계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드디어 임자를 만난걸까?
샌프란시스코 클로니클의 식당/음식 평가 팀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정평이다. 된통 한방 맞고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린 이 식당이 서비스도 Up 음식 맛도 Up 분위기도 Up 그리고 헐리우드 값은 약간 Down 해서 은퇴연금에는 손대지 않아도 될 만하면 한번 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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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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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릴 할려는지 도대체 모르겠네. 돈 있다고 자랑할려는 소리 같기도 하고. 클로니클? You mean Chron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