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문득 달력을 보니 오늘이 마침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언제 벌써 시월이 오고
또 다 가버렸나를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쓸쓸해 진다. 요즘은 나이가 팔십이 가까워 오니 자주 이렇게 마음이 쓸쓸해 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이런 날은 가수 이용이 부른 <잊쳐진 계절>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지금도 기억하
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가을은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계절이다. 시월은 가을 중에도 그 절정을 이루는 달이다. 또 가을은 고향을 생각하게 하고 향수를 불러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아무리 우리들이 외국에서 수십년을 살았다해도 자신이 태어난 땅, 자신의 어린시절을 보냈던 고향을 잊을 수는 없다. 나도 이런 날은 수십년 전의 어린 나로 돌아가, 가버린 시간들을 아쉬워 하고 그 날들을 그리워 한다.
내가 늘 마음 속에 두고 생각하는 고향은 옛날에는 부평읍이라고 부르던 과수원이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부천군의 군수를 하셨기 때문에 군수 농장이라고들 불리웠다. 배와 사과, 감들이 주렁주렁 나무에 매달렸고 특히 파아란 가을 하늘에 높이 달
려있던 주홍빛 감들은 퍽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 시골 집들은 거의 한 두그루의 감나무가 있어서 시골집 초가 집들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곤 했다. 마침 지금 내가 사는 이곳 라스모어라는 동네도 다행히 몇 그루의
감나무가 있어서 나는 이곳에서 산 지 몇년이 지난 지금 , 어느 길 옆에 어떤 감나무가
있는지 다 알아서 누구보다 먼저 감 서리를 하곤 한다.
아직 덜 익어서 딱딱하지만 빨갛게 물든 감들은 창가에 놓아두면 일주일 쯤 후면 말랑말랑한 연시로 변해, 좋아하는 친구나 이웃들에게 몇개씩 나누어 주기도
한다.
내 이웃인 구십을 바라보는 노인도 다른 과일들은 아닌데 감만 보면 지금도 자신은 미친다는 얘기를 들었다. 바로 자신의 고향이 유명한 감골인 상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그녀의 집을 가보니 감들을 곱게 깍아 정성스레 곶감을 만들어 놓았다. 베란다에 주렁주렁 감들이 매달린 것을 보니 그 연세에도 이런 열정을 가진
그녀가 새삼 다시 보였다. 자신의 나이가 어떻든 어떤 특정한 것에 열중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말하자면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왜 나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라는 노래를 목청껏 불러대도 하나도 즐겁지 아니한가. 아직 도 내 옆엔 그런대로 쓸만한 껌딱지 같은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다 건재하고, 좋은 친구들도 많고, 또 함께 문학을 사랑하는 <좋은 나무> 모임도 있고, 교회와 교회 식구들도 다 있는데 오늘 내 마음은 어째
서 이리 스산하기만 한가.
생각해보면 지금 현재 나는 다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당한 건강과 작지만 아늑한 집과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안해도 되고, 또 내가 좋아하는 글도 아직 틈틈히 쓸 수 있고, 대단히 유명하다고는 못해도 꽤많은 팬들도 가지고 있다.
성경 말씀에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에 이른다고 했다. 내가 욕심이 지나친가? 나는 이런 마음을 계절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구나 시월의 마지막 날에 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의 노래를 다시 한번 부르며 마음을 달래본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어요”
나도 한때 젊음이 있었을 때 이유 모를 이별을 한 기억이 있다. 그 밤 그 긴긴 밤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목구멍이 싸아하고 아픈 적이 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휘익 불어오니 우수수 붉게 물든 낙엽들이 떨어지고 있다. 내 마 음은 아직도 쓸쓸하지만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나는 떨어진 낙엽 몇 개를 주 워 들었다. 예쁘게 내 침실 창가에 붙이기 위해서…
<
김옥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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